2018.03.14 12:17

[국민] 체리콕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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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X 박지민 

체리콕 下 (15세이상구독권장)

※ 폭력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With 조현아 Of 어반자카파) (박경 Solo)





  너를 가지고 말겠다는 박력 넘치는 고백을 들었던 날 이후로 둘 사이는 크게 변화가 없었다당연하게도 정국이 그게 고백이었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평소와 다름없는 정국의 태도에 오히려 당황한 쪽은 지민이었다아니 내가 그런 엄청난 말을 했는데 부끄러워하지는 못할망정 태연해도 너무 태연한 거 아니야왠지 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지민은 더 적극적으로 나서자는 마음을 먹게 된다마음을 먹고 실천까지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침대에 누워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킨 후 정국이 앉아서 업무를 보고 있는 책상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어딘가 다급한 발걸음 소리에 정국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 있어요?”

  “.”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지민을 보며 정국은 크고 맑은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어디 아파요?”

  “나 좀 아픈 거 같아 정국아.”

  “어디 가요아침까진 괜찮았잖아요.”

  “갑자기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아.”


  지민이 비틀거렸다놀란 정국이 토끼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지민의 팔을 붙잡았다이렇게 보니 원래 뽀얗던 얼굴이 오늘따라 창백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반대쪽 팔을 들어 지민의 앞머리를 들춰내고 이마에 손을 댔다딱히 열은 없는 것 같은데왜 아프지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살피던 정국은 지민이 비틀거리며 자신의 품으로 파고들자 너른 품을 내어주었다.


  “괜찮아요많이 아파요병원 갈까요?”

  “아니야곧 나을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무래도 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정국은 다음 순간 자신의 엉덩이를 콱 잡아 쥐는 손길에 기겁했다그러거나 말거나 못된 손의 주인은 태연하게 탄탄하게 근육이 잘 잡힌 정국의 엉덩이를 주무르기 시작했다익숙해진 것은 엉덩이 터치였지 이렇게 떡 주무르듯 주무르는 행위가 아니었다지민을 떼어내려고 했지만어찌나 세게도 끌어안고 있는 건지 적당히 미는 것으로는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그렇다고 힘으로 떼어내자니 혹시라도 지민이 다칠까 봐 망설여졌다.


  “진짜 내 엉덩이가 그렇게 좋아요?”

  “이거 만지니까 다 나은 거 같아.”

  “와 진짜.”


  지민의 뻔뻔함에 이제는 헛웃음이 날 정도였다그래만진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정국은 포기가 빨랐다되려 지민이 정말 아픈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자포자기 한 채로 지민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니 엉덩이를 주무르던 손길이 슬금슬금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가만히 있던 정국이 매서운 손길로 지민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아야아프잖아.”

  “거긴 아직 안 돼요.”

  “?”

  “엉덩이만 만져요엉덩이만.”

  “아직 안 된다는 건 나중에는 된다는 거야정국아?”

  “…….”


  아씨내가 무슨 망언을정국은 입을 꾹 닫고 고개를 돌려버렸다지민이 정국의 품 안에서 시선을 피하는 정국을 올려다보며 킥킥 웃었다귀여워꾸기웃음을 만개한 채로 정국의 품에서 벗어난 지민이 마지막으로 탐나는 엉덩이를 가볍게 톡톡 쳤다.


  “가서 좀 쉬고 와.”

  “일은요.”

  “내가 할게.”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 탓에 정국은 그러라고 답할 뻔한 이성을 겨우 붙잡았다못 미더운 눈빛으로 지민을 바라보던 정국이 쓰읍고개를 갸웃한다의심하는 정국의 표정에 지민이 발끈했다.


  “내가 맨날 빈둥거린다고 바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나 똑똑하거든?”

  “…….”


  여전히 못 미더운 표정이었다지민은 어이가 없어서 평소보다도 커진 눈으로 억울함을 표출했다나 진짜 잘해머리를 쓸어넘기며 억울해하는 지민을 끝끝내 미심쩍은 표정으로 보던 정국이 마지못해 방으로 향했다가는 동안에도 몇 번을 돌아봤다지민은 빨리 들어가서 쉬라며 눈을 부라렸다정국이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지민은 정국이 오고 몇 달 만에 책상 앞에 앉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서류들을 빠른 속도로 훑기 시작했다정국이 워낙 철저하게 관리를 해놔서 그런지 중간에서 돈을 빼돌리거나 의도적으로 영수증을 누락시키는 행위들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상습적으로 야금야금 대금을 떼먹던 가게가 있었는데 치밀하기도 했고워낙 조금씩 꾸준했기 때문에 어떻게 조질까 고민하며 걸리기만 벼르고 있었는데 정국이 사무실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해결되었다.


  나갔다 올게요얌전히 책상 앞에만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정국에 지민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쥐새끼가 영수증을 갉아먹는 것 같아서요하며 서늘하게 웃던 정국이 떠올라 지민은 또 실실 웃음이 났다일도 잘해잘생겼어몸도 좋아귀엽기까지 해박지민 사람 보는 눈이 진짜 정확하긴 하지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남은 서류를 빠르고 정확하게 확인한 지민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덕배야지금 잠깐 사무실로 들어와라.”


  닫힌 방문을 보며 아예 리듬까지 타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기를 몇 분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부르셨습니까!”


  험악한 인상인 거구의 사내가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지민은 덕배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덕배는 지민의 앞으로 다가와 정자세로 서서 지민의 말을 기다렸다.


  “그때 내가 알아보라고 한 거 어떻게 됐어?”

  “그거 말이십니까?”

  “그리고 좀 조용히 말해.”

  “죄송합니다!”

  “조용히 말하라니까.”

  “!”


  최대한 목소리를 줄인 덕배가 괜스레 주변을 둘러보다가 허리를 굽히고 지민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보고를 시작했다최근 들어 출처를 알 수 없는 약을 들고 구역의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들이 있다는 보고를 들었던지라 가장 믿을만한 몇몇을 시켜 알아보라고 지시를 했던 참이었다.


  “형님그게 구룡파 녀석들 쪽에서 푼 모양입니다.”

  “그 새끼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대?”

  “그러게나 말입니다놈들답지 않게 움직이는 게 민첩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게 다른 놈들도 개입된 것 같습니다.”

  “다른 놈들?”

  “일단 성수 놈 말에 의하면 외국 놈들도 개입된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벌써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아 지민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지민의 모습에 덕배는 침을 꿀꺽 삼키고 지민의 눈치를 살폈다.


  “그 미꾸라지들은구룡파 놈들이 확실해?”

  “그게 아직그놈들 정체는 확실하게 파악된 게 없습니다.”


  덕배는 고개를 숙인 채로 슬쩍 시선을 올려 지민의 얼굴을 바라봤다차갑게 굳은 얼굴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서 주먹만 꾹 말아쥘 뿐이었다덕배는 빠르게 지민의 주변을 살폈다간혹 화가 나면 재떨이 같은 걸 벽에 집어 던지는 지민이었기에 던질만한 게 주변에 있다면 미리 피할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차갑게 굳어 있는 얼굴이 폭발 직전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어 덕배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그러나 예상과 달리 지민은 화를 내지도 무언가를 집어 던지지도 않았다깍지를 끼고 그 위에 턱을 올려놓은 채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그 미꾸라지 같은 놈들부터 알아봐산 채로 잡아오면 더 좋고.”

  “최대한 빨리 잡아오겠습니다.”

  “V한테는 내가 말해놓을 테니까같이 움직여.”


  V의 이름이 나오자 덕배의 동공이 커졌다아무래도 지민이 작정한 듯싶었다아무리 날고 긴다지만 미꾸라지 놈들은 아마도 곧 딱 죽기 직전의 상태로 지민의 앞으로 배달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나가 봐.”

  “가보겠습니다형님.”


  지민이 대충 손짓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항상 잠겨있는 마지막 서랍을 열었다안에는 오래된 폴더폰과 슬라이드폰들이 가득했다안을 뒤적여 폴더폰 하나를 꺼내 든 지민은 꺼진 전원을 켠 후 닫힌 채 인기척이 없는 방문을 바라봤다조금 전까지 화가 치밀어 올라 있었는데 정국을 생각하니 언제 화가 났냐는 듯 가라앉았다오히려 웃음까지 날 정도였다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제 모습이 낯설어 피식 웃는다.


  곧 경쾌한 소리와 함께 폴더폰이 켜졌다저장된 번호는 단 하나였다익숙하게 메시지를 작성한 후 전송한다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이 건방진 새끼답장을 확인하자 전원을 다시 꺼 서랍 안에 넣은 후 문을 잠근다언제나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정국도 잠긴 서랍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지 못했다으으스트레스받아정국이 가슴 만지고 싶다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심호흡을 하던 지민은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닫힌 방문으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침대에 누워있는 정국이 보였다자나발걸음을 죽이고 살금살금 다가가자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얼굴 위로 손을 휘휘 저어봐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지민은 의자를 침대 옆으로 끌고 와 걸터앉은 채로 잠든 정국의 얼굴을 내려다봤다진짜 아기토끼가 따로 없네광대가 주체하지 못하고 승천을 한다지민은 내려올 줄 모르는 광대를 주먹으로 꾹꾹 눌렀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정국의 잠든 얼굴을 보고 있으니 정국이 깨어나려는 듯 잠투정을 부렸다으으귀여워깨물어 주고 싶어바로 누워있던 몸이 지민 쪽으로 돌아눕는다지민은 아예 침대에 얼굴을 붙일 기세로 몸을 숙여 코앞에서 정국의 얼굴을 뜯어봤다눈꺼풀이 떨리는 듯싶더니 아직 잠기운이 덕지덕지 묻은 눈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어났어?”


  얼굴을 찌푸린 채 눈을 비비던 정국은 서서히 정신이 드는지 코앞에 있는 지민의 웃는 얼굴을 보자 놀라서 눈을 두 배 정도의 크기로 키웠다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상체만 일으킨 채로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듯 지민을 바라본다.


  “몇 시에요?”

  “글쎄몇 시지?”


  허둥거리며 풀어놓은 시계를 찾아든 정국이 꼭 토끼를 닮은 표정으로 지민과 시계를 번갈아 봤다벌써 6시가 넘어있었다네 시간은 더 잔 셈이었다.


  “왜 안 깨웠어요혼자 괜찮았어요?”

  “그럼!”


  여전히 얼이 빠져 있는 것 같은 정국을 보며 잠시 고민하던 지민은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쭉 켰다.


  “고기 먹으러 가자.”


  정국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더 비싼 걸 사주고 싶었는데 삼겹살을 고집하는 정국 때문에 배가 터지도록 삼겹살을 구워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마 며칠 내로 자리를 좀 비울 거야.”

  “어디 가는데요?”


  지민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목적지야 뻔했다정국은 미세하게 얼굴을 찌푸렸다요즘 들어 자꾸 잊는 거 같은데 지민은 보스의 정부였고젊은 애인에게 모든 다 줄 것처럼 푹 빠진 보스가 사무실을 맡겼을 뿐이었다가끔 이렇게 지민은 그 사실을 잊지 말라는 듯 각인을 시켜주곤 했다아무렇지 않게 지민이 보스에게 찾아가는 것을 보내고 사무실에 혼자 있거나 간혹 지민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밤 홀로 넓은 집에서 잠이 들었던 예전과는 달랐다.


  어느 순간부터 지민이 보스에게 가는 날이면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처음에는 그냥 보스의 정부일 뿐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서존경하는 보스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사무실 하나 뚝딱 받아내는 지민의 존재가 싫어서라고 생각했었다그러나 아무리 자신의 감정에 둔한 정국이라도 이 감정이 단순한 혐오감 따위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자꾸 상상이 갔다보스의 옆에서 사람 애간장 녹이는 얼굴로 웃을 지민이상상 속의 지민은 능숙하게 보스에게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린다그러다 종국에는 침대 위에서 겹쳐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는 단계에까지 이른다아읏아아보스한껏 야한 소리를 내며 좋다느니 박아달라느니 같은 말을 내뱉는 지민을 상상했을 때 정국은 악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화가 났다이유는 자신도 몰랐다입을 꾹 다문 채로 묵묵히 걷는 정국에 지민만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할 뿐이었다입술까지 꾹 깨문 모습이 뭔가 마음에 안 들어도 단단히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지민은 고개를 갸웃했다아까 안 깨워서 진짜 화났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에도 둘 사이에는 침묵뿐이었다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지 아무리 지민이라지만 지금의 정국에게는 말을 붙이기 힘든 무언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집에 도착하자마자 성큼성큼 욕실로 걸어 들어간다진짜 왜 저러지식탁에 앉아 굳게 닫힌 욕실 문을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던 지민은 곧 피식했다화가 난 토끼는 아마도 질투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욕실로 들어와 옷을 훌렁 벗어 던진 정국은 당장 샤워기로 달려갔다쏟아져내리는 물줄기를 맞으며 머릿속에 그려지는 살색의 향연들을 지우려고 노력했다물기를 털어내는 짐승처럼 빠르게 도리질도 쳐본다그렇게 노력하는데도 머릿속의 영상은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진짜 왜 이러지어딘가 죄책감까지 들었다.

죄책감에 숙연해졌다가도 난 큰 게 좋아.’ 라며 은근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던 지민의 시선이 떠오르면 또 피가 끓어 올랐다그렇게 섹스어필을 하고선다른 사람 밑에서나한테 하듯이 보스 엉덩이에도 집착할까그래도 엉덩이는 내가 훨씬 탄탄한 거 같은데맨날 내 엉덩이 만져놓고자긴 다른 사람한테으아악결국물줄기 사이로 소리를 버럭 질러버렸다무슨 생각하는 거야정신 차려보스의 사람이야아니그보다 내가 왜 저런 사람을 왜두 개의 자아가 머릿속에서 피 터지게 싸움을 이어간다.


  한참 이어지던 싸움이 결론이 난 듯싶었다이 감정은 틀림없는 질투가 맞았다정국은 욕조에 쪼그리고 앉아 엉엉 울었다첫사랑이라면 첫사랑이었다.



 

  지민이 한참이 지나도 욕실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정국을 걱정하기 시작할 즘 욕실에서 우렁찬 고함이 들려왔다얼씨구웃음이 터진 지민은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귀엽기는당장에라도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가 뽀뽀세례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저 가엾은 토끼가 놀라서 자빠질 수도 있으니 참기로 했다정국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지루해서 하품이 나올 것 같은 타이밍에 욕실 문이 열리고 풀이 죽은 정국이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욕실에서 나오면 양껏 귀여워 해주려고 했는데 기운이 쭉 빠진 채로 걸어 나온 정국은 어딘가 벌게진 눈가로 기운 없이 지민에게 꾸벅 인사를 한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러고는 지민이 붙잡을 새도 없이 자신의 방으로 쏠랑 들어가 문을 탁 잠가 버린다지민만 멍한 표정으로 식탁에 홀로 남겨졌다.




  밤새 잠을 설치던 정국은 퀭한 얼굴을 한 채로 식탁 앞에 앉았다우리 토끼 얼굴이 왜 이래다크서클 봐지민이 호들갑을 떨며 샐러드를 먹는다정국은 정말 풀을 뜯는 기분으로 샐러드를 우적우적 씹었다하도 토끼토끼 하니까 정말 토끼라도 된 모양인지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풀잎들도 잘만 들어갔다영혼 없이 샐러드를 씹는 정국을 보니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들긴 했다물론 안쓰러움보단 이제 반은 넘어왔다는 생각에 붕붕 뜨는 마음이 더 컸다애써 표정을 가다듬으며 지민도 조용히 아침 식사를 이어갔다.


  평소처럼 엉덩이를 툭툭 치는데 되려 지민이 놀랄 정도로 정국이 흠칫 놀란다요것 봐라지민이 씩 웃는 얼굴로 정국을 잡아 돌려세우고는 볼에 쪽 뽀뽀를 한다정국은 마치 시간이 멈춘 사람처럼 눈도 깜빡이지 않고 숨도 멈춘 채로 지민 옆의 허공을 바라봤다.


  “기운이 없어 보여서힘내라고내 뽀뽀 비싸다?”

  “히끅!”


  굳어 있던 정국은 몇 초의 침묵 뒤에 요란하게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틀어막고는 고개를 돌리는데 뒷목까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뽀뽀 좀 했다고 부끄러워하기는귀여워 죽겠네.”

  “뽀뽀히끅정도라뇨히끅!”


  발끈하는 모습이 귀여워 엉덩이를 두어 번 토닥였다정국이 펄쩍 놀라 뒤로 물러선다지민은 짐짓 모르는 척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갑자기다시 내외 시작하는 거야?”

  “아니거든요무슨 내외를 했다고.”


  자꾸 딸꾹질이 올라오는지 입을 틀어막은 정국이 뒷걸음질을 치다가 후다닥 달려 책상 앞에 앉았다진짜 귀여워 죽겠다지민은 소파에 앉아 흐뭇한 얼굴로 정국을 지켜봤다허둥거리며 서랍을 열어젖히는 모습에 결국 깔깔 웃었다.


  아웃지 마요시작하자마자 접어야 하는 마음에 대한 정리를 어젯밤 내내 겨우 끝냈는데 지민은 자꾸 사람을 흔들어 놓는다이렇게 시작도 못 하고 끝낼 사랑이 첫사랑이 될 줄 알았다면 더 일찍 할 걸 그랬다고 후회도 밤새 했다마지막으로 웃는 지민의 모습을 눈에 담은 정국이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민은 며칠 사이 묘하게 딱딱해진 정국의 태도에 적응을 못 하는 중이었다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절의 정국은 내외하는 느낌이었다면지금의 정국은 내외가 아니었다이건 철벽이었다사랑에 빠진 토끼는 자신을 보호할 성벽을 쌓아 올리는 중이었다.


  평소처럼 엉덩이라도 만지려고 치면 화들짝 놀라며 변태예요?” 라고 펄쩍 뛰는 게 아니라 무덤덤한 표정과 어조로 지민의 손을 떼어낸 뒤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며 사무적으로 말하는 것이었다지민은 처음 한두 번은 그러려니 넘겼는데 며칠이 지나도 정국의 태도에 변화가 없어서 당황감을 감추지 못했다질투까지 하겠다마음을 자각한 토끼가 자신의 품에 와서 안길 거라는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불만 있으면 말로 해토끼!”


  토끼 소리 좀 그만 해요같은 반응을 기다리던 지민의 기대와는 달리 정국은 서늘하고 안드로이드가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사무적인 표정으로 불만 같은 건 없습니다.” 라더니 서류로 시선을 돌린다어안이 벙벙해진 지민은 우리 토끼 사춘기 온 거야?” 하고 우는 소리를 냈다정국은 지민의 우는 소리에도 서류에 고정한 시선을 들지 않았다지민이 우울한 티를 내면 안절부절못하며 달래주려고 하던 정국은 더는 없었다.


  답답해서 왁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누르고 있는데 밖에서 거칠게 노크 소리가 들렸다들어와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대충 대꾸하자 문이 열리고는 덕배가 허겁지겁 들어온다처음 보는 남자의 등장에 정국이 의아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지민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보스한테 갔다 올 거야기다리지 말고 먼저 퇴근해.”


  차가운 지민의 표정과 말투에 정국은 가슴이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답이 없는 정국을 한 번 바라본 후 지민은 덕배를 따라 문을 쾅 닫고 사무실을 나섰다홀로 남은 정국은 의자에 푹 기댄 채로 천장을 올려다봤다.


  덕배가 찾아온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아도 뻔했다미꾸라지 같은 놈들 생각을 하니 여태 골머리를 앓았던 시간들이 떠올라 표정이 굳었던 건데 그 사실을 모르는 정국이 단단히 오해했다는 것을 지민은 꿈에도 몰랐다머릿속에는 당장 그 미꾸라지 같은 놈들을 족쳐버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보스의 사무실은 조직의 가장 심장부 같은 곳이었다지민은 익숙하게 가장 꼭대기 층에 있는 방문을 발로 뻥 차 열어젖혔다보스와 불리는 남자 외 젊은 남자 한 명이 지민을 기다리고 있었다덕배가 문을 닫고 나가자 사무실에는 세 명과 바닥에 머리를 박고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 몇 명만 남았다지민은 옷을 걷어 올리고 무릎을 꿇은 남자들 앞에 놓인 의자에 가 앉았다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야 그래도 말은 할 수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말 잘해.”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며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은 젊은 남자가 지민 쪽은 보지도 않고 말했다남자의 저음이 들리자 발작적으로 몸을 떠는 미꾸라지들을 보며 지민은 피식 웃음이 터졌다.


  “애들을 얼마나 거칠게 다뤘으면 니 목소리만 듣고 쪼냐?”

  “쫄아다 새끼들.”


  여전히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남자가 낄낄 웃었다보스라고 불리는 남자는 말없이 지민의 옆에 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곧 캐릭터가 죽었는지 남자는 스마트폰을 소파 위로 내던지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좀만 더 하면 다 깼는데짜증이 나는지 뒷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던 남자가 그제야 지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쪽이 더 재밌어 보인다.”


  눈을 빛내며 벌벌 떨고 있는 애처로운 등을 바라본다어휴지민은 남자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는 떨고 있는 미꾸라지 한 마리의 머리채를 잡아 자신을 바라보게 들어 올렸다.


  “너 어디서 왔냐?”


  뭐라 웅얼거리는데 알아듣지를 모를 말들이었다잔뜩 부은 얼굴을 내려다보며 지민이 안쓰러운지 쯧쯧 혀를 찼다.


  “말 잘한다며태형아.”

  “너 말 잘하잖아왜 안 해?”


  태형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잡고 있던 머리채를 놓은 지민이 그 옆 남자의 머리채를 잡아 들었다.


  “그럼 니가 말해라.”


  앞의 남자보다는 상태가 조금 나은 지 더듬거리며 말을 잇는 것을 들으며 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구룡파 이 씹새끼들이거칠게 머리채를 놓으며 지민은 발로 바닥을 찼다그러거나 말거나 태형은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


  “이야 진짜 골 때리는 새끼들이네.”


  눈물까지 찔끔 났는지 눈가를 검지로 훔친다웃기냐괜히 불똥이 튀었지만태형은 킥킥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웃기잖아낄낄거리는 태형을 한심하게 바라본 지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게?”

  “토끼는 외로움 많이 타서 혼자 두면 안 돼.”

  “맞아잘돼가냐?”


  지민이 태형을 노려봤다뭐야왜 갑자기 노려봐태형은 억울했다그러거나 말거나 한숨만 푹푹 쉬던 지민은 계속 옆에 서 있던 보스라 불리는 남자에게 엉망인 채로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남자들을 가리켰다.


  “적당히 치워둬죽이진 말고.”

  “안 묻어?”

  “아직.”


  태형이 끼어들었다지민의 단호한 반응에 재미없다며 태형은 다시 던져놓았던 스마트폰을 들었다나간다대충 인사를 하자 태형도 성의 없게 손을 들어 빠빠이해준다.



 


  정국은 대부분의 시간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저녁 시간이 되어 사무실 문단속을 하고 집으로 올라갔다혼자 집으로 올라오는 일이 이렇게 서러운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우울하게 터덜터덜 집으로 들어가 식탁에 기운 없이 앉아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는 소리가 났다정국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현관 쪽을 바라본다곧 지민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우리 꾸기 형아 기다렸어?”


  정국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밝은 지민의 모습에 정국은 단전에서부터 뭔가 울컥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으려다 보니 눈에도 힘이 들어가고 콧구멍도 벌렁거렸다이상한 정국의 표정에 지민이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대체 무슨 표정이야?”


  귀엽다는 듯 흐뭇한 얼굴로 다가온 지민이 앉아 있는 정국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는다지민의 손길이 닿자 더 참기 힘들어진 정국이 입술까지 꽉 깨물었다자신과 눈을 맞추지 않으려는 정국 때문에 무릎을 굽힌 지민이 얼굴을 들이밀고는 정국을 빤히 바라본다이리저리 지민을 피하던 정국이 결국은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좋았어요?”

  “뭐가?”

  “보스랑 좋았어요?”

  “…….”


  눈물까지 그렁그렁해서 따지는 모습에 예상치 못했는지 굳은 지민의 침묵을 긍정이라고 생각했는지 정국이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좋으면 계속 같이 있지왜 왔어요!”

  “푸하하!”


  사태가 파악되자마자 지민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철벽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토끼는 바깥이 궁금해 고개를 빼꼼 내밀다가 그 밖에 서 있던 지민과 눈이 마주친 것이었다.


  “웃지 말라고요!”

  “아 웃겨 죽겠네.”


  눈물까지 찔끔 흘리고 웃는 지민 때문에 정국은 더 약이 올랐다누군 심각한데 자기는 웃기나 하고고개를 휙 돌리는 삐진 토끼의 모습에 지민은 자꾸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꾹꾹 눌러 담았다.


  “난 네가 더 좋아.”


  정국의 토끼눈이 지민에게로 향했다지민은 진정된 얼굴로 정국의 볼을 양손으로 잡았다.


  “이제 사춘기는 끝났어?”

  “내가 언제 사춘기가 왔다고 그래요.”

  “너 요즘 나한테 엄청 쌀쌀맞게 군 건 생각 안 나난 너 안드로이드인 줄 알았다꾹이 2호 이런 거.”


  지민의 손에서 벗어난 정국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어디 가씻으러요망설임 없이 욕실로 들어가는 정국을 보며 지민은 하품했다또 한 시간 뒤에야 나오겠네.






*   *   *  






  지민의 말에 의하면 건방졌던 정국의 사춘기가 끝남과 동시에 두 사람의 관계는 어느 정도 예전과 같은 궤도에 올라섰다여유가 있었다면 이대로 몰아붙였겠지만얼마 전에 잡은 미꾸라지 건으로 지민은 여유가 없었다처음에는 지민이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더니 그 후부터는 정국을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 많아졌다지민이 보스를 찾는 것보단 자신이 밖으로 나가는 게 마음이 편했는지 정국은 군말 없이 지민의 말을 따랐다.


  정국이 사무실을 비우면 지민은 덕배나 태형을 사무실로 불렀다얼마 전에 잡은 미꾸라지들은 일본 야쿠자가 한국에 약을 팔아먹기 위해 자금을 대준 뉴 카르텔의 조직원들이었다일본 자본을 등에 업은 놈들은 조금 더 편하게 한국 시장 장악을 위해 구룡파에 접근했고멍청한 구룡파 보스는 거기에 홀랑 넘어간 거였다언제 삼켜버릴지 타이밍을 재고 있는 뱀인지도 모르고 내부로 들인 꼴이 우스웠다.


  “그래도 정말 의리 없는 놈들 아닙니까이런 사실을 홀랑 불어버리다니.”


  덕배의 말에 태형은 어깨를 으쓱했다지민은 천장만 올려다보고 있었다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찜찜했다아무리 몸이 힘들고얕은 유대감이라고 해도 내부까지 들어와 휘저을 생각을 하는 놈들인데.


  “뭔가 이상해.”


  그런 지민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태형이 말했다지민은 몸을 바로 세워 앉았다.


  “태태너도 그렇지?”

  “대충 몸 좀 쓰는 놈들 같던데 너무 쉽게 잡혔단 말이지.”

  “손톱이라도 하나하나 뽑아야 하나싶었는데 너무 쉽게 다 불어버린 것도 그렇고찜찜하단 말이야.”


  배신에 대가는 할복뿐이라는 놈들을 등에 업은 놈들이 이렇게 간단하게 배신한다고아무리 생각해도 말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석연찮은 점이 있었다뭘까대체다들 생각에 잠긴 건지 사무실 안에는 정적이 이어졌다그 정적을 깨뜨린 것은 세 사람 중 누구도 아니었다.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지민과 태형은 느릿하게 사무실 문 쪽을 바라봤다덕배가 자리에서 일어난다알아보고 오겠습니다문이 열리자마자 아수라장이 된 복도가 눈에 선하게 그려질 정도로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지민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손님이 왔나 보네.”


  태형이 태연하게 문밖을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 지민을 바라본다짜증 나 죽겠어다 죽여버려 진짜진짜진짜 다 죽여묘하게 반색이 도는 태형의 얼굴을 바라보며 지민은 금방 놓칠 것 같은 이성을 다잡았다안 돼죽이진 마태형이 그럴 줄 알았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나갔다 올게고함과 비명이 난무하는 복도로 태연하게 걸어나가는 태형을 보며 지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을 열고 총을 꺼내 들었다그대로 사무실 안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에 앉는다마치 들어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친 욕설들이 사무실에서 들려왔다지민은 평온한 표정으로 당장에라도 쏠 수 있게 총을 장전했다쿵쾅거리는 발걸음과 함께 거구의 남자가 문을 열어젖히는 순간 지민의 총알이 다리를 뚫고 지나간다남자의 다리가 풀썩 꺾이자 이번에는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거친 욕과 함께 나타난 두 번째 남자에게도 똑같은 상처를 선물해주었다학습 능력이 없는지문 앞에 차곡차곡 쓰러져 있는 남자들을 보며 지민은 태연하게 다시 장전한다여태 들어왔던 남자 중에서 가장 험악하게 생긴 남자가 들어왔다느껴지는 게 마지막인 듯 했다.


  “니가 끝이야?”

  “이 씨발니가 우리 애들 이렇게 만들었냐?”

  “안 죽었으니까 데리고 꺼지든가.”


  지민이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꺼지라는 손짓을 했다남자는 품에서 칼을 꺼내더니 지민에게로 돌진했다짜증만 가득하던 지민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진다총알이 팔을 스쳐도 멈추지 않고 달려오던 남자가 몸을 날린다지민은 재빨리 한 바퀴 구른 후 총알이 스친 팔을 걷어찼다단말마와 함께 남자가 풀썩 쓰러졌다다시 일어나려는 남자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민 지민이 다시 침대에 앉아 칼을 쥔 손을 밟는다남자가 칼을 놓지 않자 발을 들어 올려 손목을 부러뜨릴 기세로 밟아댔다결국남자가 칼을 놓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이 지민은 남자가 놓친 칼을 집어 들어 자신의 뒤쪽으로 던져놓았다.


  “구룡파?”

  “…….”

  “이렇게 멍청한 짓 할 새끼들 구룡파 밖에 없는데. 뉴 카르텔은 아무리 봐도 약아빠진 놈들 같아서 말이지.”


  지민이 총구로 남자의 머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남자는 지민이 밟아댄 손목을 감싸 쥐고 있었다굳이 답을 듣지 않아도 뻔했다자신은 보스의 정부로 알려져 있으니 심지어 애지중지한다는데 납치해서 협박이라도 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너희 동업자는 너희 이렇게 멍청한 짓 하는 거 알고 있어?”


  남자는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로 씩씩거리기만 했다꼴을 보아하니 그쪽과는 협의가 되지 않은 일인 듯싶었다사무실까지 쳐들어와 이 난리를 피웠는데 이 새끼들을 이제 어쩐다생각하는 게 너무 1차원적이라서 뭘 알아낼 가치도 없는 듯했다느긋하게 어떻게 할까확 다 묻어버릴까 같은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열린 문을 통해 들려왔다.


  “!”


  정국의 목소리였다습격 소식을 전해 듣고 허겁지겁 돌아온 모양이었다어쩐다아직 들키기 싫은데잠시 고민하던 지민은 자신의 뒤에 놓인 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망설임 없이 자신의 왼팔을 그어냈다살짝 얼굴을 찌푸린 후 눈앞 남자의 손에 칼을 쥐여주었다남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자신의 총은 저 멀리 던져버린 지 오래였다씩 웃은 지민은 그다음 순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아악!! 아악살려주세요!! 아악!!!”

  

  남자는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다너무 놀라 사고가 정지된 채로 멍청한 표정으로 자기 팔을 그으면서도 비명을 지르지 않던 남자가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을 지켜봤다곧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등 뒤로 들려왔다남자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달려온 정국이 남자의 등을 사정없이 걷어차 버렸다하필 총이 스친 쪽으로 넘어진 남자가 고통에 몸부림을 치는데 지민의 왼팔에서 흐르는 피와 남자의 손에 들린 칼을 본 정국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 쓰러진 남자를 걷어찼다그러다가 정신을 차렸는지 왼팔을 감싸 쥐고 있는 지민에게 달려갔다.


  “괜찮아요!”


  놀란 토끼 한 마리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며 지민은 웃음이 나려는 것을 꾹 참고 대신 정말 아프다는 듯 울상을 지었다.


  “어떻게괜찮아요많이 아파요?”


  바닥에 쓰러진 남자는 흐릿한 정신 사이로 보이는 광경이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고억울하기도 했다얻어맞은 건 나인데끙 앓는 소리를 내니 정국의 시선이 닿는다정국은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쓰러져 있는 남자들을 보니 여기 누가 있었나 싶은 의문이 들었다지민에게 여기 누가 있었냐고 물어보려는데 지민이 선수를 쳤다.


  “아악정국아어떡해나 너무 아파으허엉.”


  우는 소리를 내자 깜짝 놀란 정국이 등을 지민에게 내밀었다지민이 낑낑거리며 업히자마자 박차고 일어선 정국은 난장판인 복도를 달렸다넓고 편안한 정국의 등에 지민은 광대가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더 꽉 끌어안으니 그에 답하기라도 하듯 정국도 지민의 엉덩이를 받친 손에 더 힘을 준다.




  다행히도 심한 부상은 아니었다살짝 피부가 찢어진 정도라는 의사의 말에 정국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붕대를 감고 새침한 표정으로 침대에 앉아 있는 지민을 보며 정국은 자책하듯 한숨을 푹푹 쉬었다.


  “많이 무서웠죠내가 더 빨리 갔어야 했는데.”

  “괜찮아와줬잖아.”


  지민의 웃는 얼굴에 마음이 놓이는지 정국도 긴장이 풀린 표정으로 등 뒤로 손을 짚고 눈을 감는다지민은 그런 정국의 볼에 짧게 입을 맞췄다감겨있던 눈이 번쩍 뜨였다.


  “뭐예요!”

  “뭐긴 뽀뽀한 거지.”

  “아니 그걸 왜 나한테 하냐고요!”

  “좋아하니까?”

  “좋아해요?”

  “내가 계속 말했잖아좋아한다고.”

  “언제요!”

  “몇 번 말했던 거 같은데?”


  지민이 고개를 갸웃한다정국도 몇 번 들은 기억은 있다다만그게 진심일 거라 생각한 적이 없을 뿐이었다지민은 어찌 되었든 보스의 사람이었고그저 반응이 재밌어 놀리는 것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거 다 진심이었어요?”

  “진짜 너무한다그럼 거짓말 같았어?”

  “아니형은 너무막 그런 말도 막 하고 그러니까 진짜.”

  “그래서 아무한테나 그러는 놈인 줄 알았다는 거지?”

  “아니 그게 아니라.”


 정국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지민은 일부러 굳히고 있던 표정을 풀고 푸흐흐 웃었다놀리는 건 그만해야겠다.


  “그때 그랬잖아. 아무한테나 안 그런다구.”


  이리저리 방황하던 정국의 눈동자가 이번에는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일방통행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이 쌍방향일 거라는 생각에 심장도 쿵쾅쿵쾅 뛴다부끄러운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눈동자를 보며 지민이 정국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정국은 정말 로봇처럼 뻣뻣한 움직임으로 조심스레 지민을 끌어안았다마주 닿은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   *   * 





 

  가벼운 부상이긴 했지만괜히 움직이다 더 다친다는 정국 때문에 지민은 몇 주 동안이나 정국이 떠먹여 주는 밥을 먹어야 했다사실 나쁘지 않았기에 그냥 잠자코 있었다한 번은 지극정성인 연하남을 놀려줄 생각으로 옷 입는 걸 도와달라고 했는데 정국은 얼굴이 아주 토마토마냥 시뻘게져서 헛기침해댔다아예 고개까지 돌려버린 정국의 턱을 붙잡아 돌린 지민이 입술 위에 쪼옥 입을 맞췄다잠시 머뭇거리던 정국이 지민의 허리를 당겨 안고 다 삼켜버릴 기세로 키스하는 바람에 지민은 숨이 막혀 죽는 줄 알았다얘 폐활량도 장난 아니네숨을 몰아쉬며 지민은 흐뭇한 생각에 흐흐 웃었다왜 그렇게 변태처럼 웃어요지민에 비해 아주 멀쩡한 호흡으로 정국이 말했다지민은 정국의 어깨를 잡고 다시 한 번 입술 위에 쪽 뽀뽀를 했다정국의 눈빛이 변했다출근해야 하는데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지민은 눈을 감았다.


  사무실에서도 틈만 나면 붙어서 입술을 맞대기 바빴다어차피 둘뿐이겠다걸릴 것도 없었다아예 정국의 위에 올라타 서로를 먹어치우듯 입술을 부딪치고 혀를 섞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났다정국이 먼저 입술을 뗐다아쉬운 기분에 지민이 입을 삐죽이다가 정국의 위에서 내려왔다곧 문이 열리고 들어온 것은 지민으로서는 낯선 인물이었다.


  “석호 웬일이야?”


  아마도 그 낯선 인물은 정국과 아는 사이인듯했다지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석호라는 남자를 노려봤다뭐 엑스 보이프렌드 이런 건 아니겠지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가장 잘 알면서도 괜스레 질투가 났다.


  “형님조금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


  석호가 지민을 힐끔 바라보고는 안절부절못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정국은 아끼던 부하가 여기까지 찾아온 거 보면 심각한 일이라고 판단되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지민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정국을 올려다봤다.


  “금방 올게요미안해요.”


  다정한 연하남은 삐진 연상 애인을 위해 코끝을 찡그려가며 웃었다지민이 가장 약한 정국의 표정이기도 했다.


  “빨리 와라삐지기 전에.”

  “금방 올게요.”


  쪽지민의 이마 위로 입을 맞추고는 이미 나가 있는 석호를 뒤따랐다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지민을 바라볼 때와는 정반대로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였다사무실 밖에 서 있는 석호를 보자마자 무슨 일이냐고 묻자 석호는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불안감이 점점 커졌다.




  차에 올라타기 무섭게 석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석호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정국의 표정이 무섭게 굳어갔다.


  “재한이놈 어머님이 많이 편찮으신 모양이더라고요.”


  후정국은 눈을 감은 채 깊은 한숨을 쉬었다노모를 모시고 살던 재한은 우직하지만그만큼이나 의리도 있고 착실한 사람이었다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신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가장 금기시되는 일에 손을 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조직의 돈에 손을 댄 것이었다.


  “지금 사무실 완전히 뒤집혀서 난리입니다아마 곧 윗분들도 다 아실 것 같은데.”

  “재한이가 그랬다는 건 너 말고 또 누가 알아.”

  “아직은 저만 압니다.”


  정국은 생각에 잠겼다조직 돈에 손을 댄 사람이 사지 멀쩡히 걸어나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보스는 특히 조직 돈에 손을 대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더더욱 걱정이었다근 반년 만에 찾는 사무실이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정국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석호의 뒤를 따랐다작게 딸린 쪽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는 재한이 보였다.


  “얼마야.”

  “오백이요.”

  “왜 그랬어.”


  정국이 무거운 목소리로 재한의 앞에 앉으며 말했다재한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묵묵부답이었다답답한 마음에 자꾸 한숨이 나왔다.


  “차라리 날 찾아오지어쩌자고.”

  “죄송합니다정말수술 못 하면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데 눈앞이 새하얘져서제가 정말 죄송합니다.”


  작은 쪽방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한참을 생각하던 정국이 재한의 어깨를 붙잡았다눈시울이 빨개진 채로 재한이 정국을 바라봤다.


 “그래어머님은 괜찮으시고?”

  “다행히 괜찮으십니다.”

  “그럼 됐다재한아잘 들어.”


  재한이 고개를 끄덕인다정국은 입을 몇 번 열었다 닫으며 망설였다.


  “넌 이번 일이랑 아무 관련 없는 거다.”

  “?”

  “돈은 내가 손댄 거고너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다.”


  재한이 놀란 눈으로 정국을 바라봤다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자꾸 입을 뻐끔거렸지만뭐라 말이 나오질 않았다더 앉아 있다가는 말도 안 된다며 재한이 바짓가랑이라도 잡을 것 같아 정국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님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제 일인데 왜.”

  “너는 걸리면 한 번에 끝이고나는 기회라도 있지 않겠냐.”


  간다밥 잘 챙겨 먹고정국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걸음을 옮겼다닫히는 문 틈새로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정국을 기다리며 폰을 만지작거리던 지민은 폭풍처럼 도착하는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누워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

  [빡짐]

  [너네 토끼 사고 쳤던데]

  [돈에 손을 댔대]


  지민은 망설임 없이 태형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두 번도 가지 않아 태형이 전화를 받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 말 그대로인데돈에 손을 댔대.

  “얼마를?”

  — 얼마였지오백이었나?

  “아니걔가 왜어디서!”

  — 원래 일하던 데서 그랬다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끊는다.”


  지민은 태형이 채 대답하기도 전에 전화를 뚝 끊고는 다시 뒤로 벌러덩 누웠다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정국은 여기에 온 이후로 이전 사무실에는 한 번도 가지 않았으며그런 짓을 할 사람도 아니었다언젠가 본 정국의 폰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깨끗했으며 연락하는 사람도 손에 꼽고 그마저도 대부분은 일과 관련된 내용들 뿐이었다지민은 오늘 정국을 데리러 왔던 남자를 떠올렸다대충 그림이 그려졌다정국은 그러니까자기 아랫사람의 죄를 뒤집어쓰려고 하는 중이었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으니 정국이 돌아왔다지민은 짐짓 화난 표정으로 정국을 바라봤다차가운 지민의 표정에 정국이 흠칫 놀라더니 시선을 돌린다.


  “전정국.”


  지민이 제 이름 석 자를 다 부를 때는 제법 화가 났다는 뜻이었다정국은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치는 지민의 옆에 가서 앉았다.


  “내가 보스한테 잘 말해줄게.”


  지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토끼눈을 한 정국이 지민을 바라봤다걱정하지 마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지민이 어깨를 으쓱했다정국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속에서 불길이 치솟는 기분이었다자신 때문에 지민이 보스에게 가서 봐달라며 애교를 부린다는 건 상상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은 일이었다.


  “나 때문에 그러지 마요.”

  “걱정하지 마라니까?”

  “진짜날 걱정하는 게 아니라형이 그러는 게 싫으니까 제발 그러지 마요.”


  눈물까지 그렁그렁하게 단 채로 말한다지민은 웃는 얼굴로 정국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꼭 말 잘 듣는 강아지를 타이르는 손길 같았다.


  “괜찮으니까 울지 말고 여기 있어.”

  “.”

  “괜찮다니까괜찮으니까 따라올 생각 하지 말고 여기 딱 기다리고 있어.”

  “가지 마요.”

  “따라오면 진짜 화낼 거니까 절대 따라오지 마라?”


  절대 오지 말라고 강조하는 모습이 꼭 내가 베갯머리 송사로 없던 일로 만들어 줄게라고 말하는 것 같아 정국은 서러워졌다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는 정국의 이마에 입을 맞춰 준 지민이 잡을 새도 없이 사무실을 나섰다홀로 남은 정국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비참함을 느껴야 했다혼자 꺽꺽대며 울다가 보스와 지민의 모습이 상상이 되자 더는 참을 수 없겠는지 오지 말라는 지민의 으름장도 무시한 채 정국 역시 보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확인해보니까 아랫놈이 노모의 수술비 때문에 돈에 손을 댄 모양입니다.”


  보스라 불리는 중년의 남성이 정중한 태도로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지민에게 보고를 올렸다역시 그럴 줄 알았어지민은 뻔한 이야기에 지루한 듯 고개를 저었다.


  “진짜 마음씨도 곱지?”

  “.”


  소파에 구겨져 앉은 채로 폰게임을 하던 태형이 토하는 시늉을 했다그러거나 말거나 지민은 정국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기 바빴다중년 남성은 허허 웃으며 지민의 말에 간간이 맞장구를 쳤다.


  “그냥 돈만 천천히 다 갚아서 메꿔놓으라고 해.”

  “진심이야?”


  평소 같으면 절대 나올 리 없는 유한 처사였다태형이 놀라 화면에서 눈을 떼고 지민을 바라봤다유한 정도가 아니었다지민이 저 자리에 앉은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박지민이 사람이 됐어.”


  태형이 고개를 저으며 화면으로 시선을 내렸다가 빽 소리를 질렀다또 죽은 모양이었다어휴지민은 태형을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봤다허허 웃던 중년 남성이 하나 남은 보고를 마저 올렸다.


  “그때 잡혔던 뉴 카르텔 조직원들은 몸속에 칩을 박은 모양입니다위치를 추적해서 거기부터 치고 들어올 셈이었던 거 같은데 구룡파 녀석들이 먼저 일을 벌이는 바람에 무산이 된 것 같습니다.”

  “어쩐지뭔가 구리다 싶었어.”

  “아마 당분간은 잠잠할 것 같습니다.”


  그러게 사업파트너는 신중하게 골라야지최근 괴롭히던 일이 하나 사라지자 마음이 편해진 지민이 오랜만에 앉은 자신의 자리에서 좀 쉬려는데 밖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문 쪽으로 향했다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곧 문이 벌컥 열렸다방 안으로 튕기듯 들어온 정국은 안을 살펴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무릎을 꿇었다.


  “제가 다 잘못했으니까나 때문에 그러지 말고.”


  사무실 안은 고요했다정국은 질끈 감은 눈을 슬쩍 뜨는데 어디서 작게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조심스레 고개를 드는데 원래 보스의 자리에 앉은 지민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아무리 보스가 지민을 아낀다지만 자신의 자리까지 양보해준다는 게 이상해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으니 옆쪽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작게 웃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배를 잡고 깔깔 웃기 시작했다정국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빡짐내기 내가 이긴 거다?”

  “아씨.”


  지민이 짜증 서린 표정으로 태형을 한 번 노려본 후 머리를 쓸어 넘겼다.


  “내가 따라오지 말랬잖아김태형한테 졌어몰라몰라!”


  정국은 멍한 얼굴로 태형과 지민과 자신이 보스라고 생각했던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어딘가 이상했던 구석들까지 한 번에 해결해주는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지민은 보스의 정부가 아니었다정부의 탈을 쓴 진짜 보스였다.


  “형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반년 가까운 시간을 같이 살면서 감쪽같이 속였다는 사실에 배신감이 들었다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정국이 지민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좀 사정이 많은 사람이라이렇게 오래 속일 생각은 없었는데 얘랑 내기하는 바람에.”


  지민이 태형을 가리켰다정국이 자신을 바라보자 태형이 V자를 그려 보였다.


  “안녕지민이네 토끼군들어보니 정력이 그렇게 좋다면서매일 밤 지민이가 행복해 죽는다는 소문이 있던데.”


  정국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지민을 바라봤다지민이 깔깔 웃는다. V자를 그리고 있던 손을 뻗어 태형이 정국에게 악수를 청했다정국은 내밀어 진 손을 멀뚱히 내려다봤다.


  “안녕난 김태형이야다른 이름으로는 V라고도 하지.”


  정국이 놀라 태형의 얼굴을 바라봤다. V라고 하면 얼굴도 알려지지 않은 조직 최고의 암살자 아니던가얼굴만 뚫어져라 바라보자 뭐하냐는 듯 태형이 악수를 재촉했다정국이 손을 뻗어 태형의 손을 잡으려고 하자 지민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잡지 마안 돼내 거야!”

  “진짜됐어안 해 악수.”


  태형이 정국에게 내밀었던 손을 거두고는 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삐졌냐태형을 툭 친 지민이 자신에게서 휙 등을 돌리는 태형의 행동에 중지를 들어 보인 후 평소의 발랄한 표정으로 정국에게 다가왔다.


  “이제 집 가자너 그 돈 쌔빈 놈은 일해서 갚으라고 시키기로 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형이 다 해결해준댔지다정하게 웃으면서 엉덩이를 팡팡 두드린다진짜 사람들도 있는데말은 그렇게 하면서 정국은 이미 지민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항상 나란히 누워 잠이 드는 침대에 누워서 지민이 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보스라 알려진 남성은 예전 보스의 오른팔로서 전대 보스가 죽기 전까지 평생을 함께 한 사람이라고 했다죽은 전 보스의 아들이 지민이었으며아직 어리기도 하고 조직을 배신하고 구룡파로 기어들어간 미꾸라지들에게 얼굴이 알려진 것도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표면적 보스의 역할을 맡긴 것이라 했다.


  “사실 너는 모르겠지만난 너 오래전부터 봤었어.”

  “어디서요?”

  “첨엔 클럽에서 봤었는데너 아직 잡일하고 있을 때.”

  “엄청 옛날인데요.”

  “영업하는 거 확인하러 갔다가근데 맘에 들길래 데리고 와서 일이나 제대로 가르쳐보라고 했지내가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하거든.”


  결국정국을 조직에 들인 은인은 지민인 셈이었다.


  “근데 일도 잘하고 얼굴도 취향이고잘 컸길래 때가 되었다 싶어서 너 부른 거야.”

  "와 근데 계속 모른 척했어요?"

  “역시 사람 보는 눈은 내가 정확하다니까.”


  지민이 정국의 품으로 파고들어 익숙하게 입을 맞췄다.

 





*   *   * 





 

  한 번 하기 시작하면 세 번을 하고 나서도 죽지 않는 정국 때문에 지민은 매번 섹스 후면 정말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지친 얼굴로 정국의 팔을 베고 누운 지민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해준 이야기를 정국은 경청했다자신의 팔 위로 흩어진 지민의 머리카락이 간질거리면서도 묘했다아으앓는 소리를 내며 돌아누운 지민이 정국의 가슴 쪽으로 붙어 품에 꼭 안겼다마른 허리를 감싸 안고 보이는 대로 지민의 얼굴 위로 뽀뽀세례를 퍼부었다간지러운지 푸스스 웃던 지민의 얼굴이 굳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너 또 세우면 진짜 나 죽는다?”

  “에이안 죽어요.”

  “아니야진짜 섹스하다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질겁하며 몸을 빼는 지민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은 정국이 이마를 맞댄 채로 지민이 가장 약한 토끼 같은 얼굴로 웃었다.


  “싫어요나는 더 하고 싶은데.”

  “나 진짜 죽을지도 몰라.”

  “살살할게요.”

  “거짓말하지 마너 맨날 살살한다면서!”

  “이번엔 진짜로요.”


  지민은 결국 눈을 감고 입술을 쭉 내밀었다정국의 저 얼굴에 너무 약해서 탈이었다두 사람에게 주어진 밤은 어차피 길었다.



 

  밤새 얼마나 울었는지 탱탱 부은 얼굴로 눈을 뜬 지민은 끊어질 것 같은 허리에 곤히 자는 정국을 퍽 발로 찼다가 골반이 찌르르 울리는 바람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야 했다잘 자다가 발에 차인 정국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으음잘 잤어요?”

  “살살한다며죽을래?”

  “헤헤형이 너무 예쁜데 어떡해요그럼예쁘지나 말던가.”


  날이 갈수록 업그레이드되는 정국의 뻔뻔함에 지민은 뒷목을 잡았다아이고아기토끼인 줄 알았는데 근육토끼였어지치지 않는 정국 때문에 혹사당한 아래가 비명을 질러댔다지민은 굳게 결심한 얼굴로 여전히 누운 채로 상체를 세우고 앉은 정국을 노려보며 말했다.


  “일주일간 금지야각방 써.”

  “뭐라고요?”

  “이대로 살다간 정말 나 복상사할 거 같으니까 안 돼.”


  정국은 세상이 무너진 표정으로 지민을 바라봤다안 돼저 표정에 넘어가면 안 된다지민아마음 굳게 먹어이건 너의 허리를 위해서야.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언제는 많이 해서 좋다면서요!”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그러면 나 진짜 죽는다정국아.”

  “내 순정그렇게 다 따먹어 놓고 어떻게 각방을 쓰자고 해요!”

  “뭐라고뭘 해?”

  “언제는 좆까지도 잘생겼다 해놓고서는!”


  아이고 두야지민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어쩌자고 저런 말을 해서그렇게 순수한 토끼 같던 아이에게 제가 무슨 짓을 한 건가요이번에도 지는 것은 결국 지민이었다.


  “그래미안하다각방은 좀 심했네.”

  “손만 잡고 잘게요.”


  전혀 믿음직스럽지 못했지만지민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제발 그랬으면 좋겠구나정국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앓는 소리를 내는 지민을 번쩍 안아 들고 욕실로 향했다욕조에 앉혀주고는 온도를 확인하여 물을 받아준다.


  “씻겨줄까요?”

  “괜찮아.”

  “그럼 씻고 나와요.”


  정국이 욕실을 나가고 따뜻한 물에 몸을 노곤하게 녹인 지민이 앞으로의 섹스라이프에 대한 재고를 다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결국정국 앞에서는 무의미한 다짐이 되겠지만. 다정하고 정력적인 연하남은 너무 좋았지만 가끔은 힘에 부치기도 했다.


  몸이 어느 정도 풀리자 샤워까지 하고 욕실을 나오자 정국이 기다렸다는 듯 뛰어와 번쩍 안아 들었다아이고힘도 좋다두 다리를 까딱하기에도 힘이 들었기에 지민은 얌전히 정국의 품에 안겼다휴일이라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생각하며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꼭 붙어 앉아 영화도 봤다그러다 점심을 먹고 같이 뒹굴거리다 보면 하루가 지났다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일상이었지만 매일매일이 행복했다.


  “잘자요.”


  쪽입술 위로 가볍게 입을 맞추며 정국이 속삭였다너도꼭 형아 꿈에 찾아오고담백한 입맞춤이 이어졌다단둘이 이렇게 평생 산다 해도 좋았다평화로운 주말이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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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트라이앵글 창간호에 참여했던 글입니다! 제 안에서 가장 국민다운 느낌의 국민이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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