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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llon - Thirteen Thirtyfive


돌이킬 수 없는
민윤기 박지민



  지민은 발끝을 들고 살금살금 걸었다. 손 안에 쥔 날붙이의 무게가 오늘따라 선명하게 느껴졌다. 지민이 숨소리를 죽인 집 안은 고요한 달빛만이 은은하게 채우고 있었다. 모든 세상이 잠들었을 새벽, 지민은 미리 숨겨두었던 칼을 손에 꽉 쥔 채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소년의 눈동자가 흉흉하게 빛났다.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그리고 실행해왔던 일이었다. 거대한 2층 주택의 가장 안쪽 방의 문 앞에 선 지민은 눈을 감고 숨까지 멈춘 채로 방 안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집중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면으로 침대가 있다. 문을 열고 침대로 뛰어들어 심장에 칼을 꽂아 넣는 데까지는 2초. 지민은 눈을 위로 치켜떠 고풍스러운 저택의 천장을 바라봤다. 슬슬 숨을 참는 것도 한계였다. 아직 작은 손이 차가운 문고리에 닿았다. 소리 없이 문을 열어젖힌 지민이 침대를 향해 뛰어올랐다. 칼끝으로 전해지는 감촉에 지민은 눈을 질끈 감았다. 


  "꼬맹아."


  옆에서 건조하고도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지민의 39번째 암살시도는 그렇게 끝이 났다.





  "밖에서 그렇게 오래 뜸을 들이면 안 되지."


  별로 오래 들인 것 같지도 않은데. 남자는 예민했다. 남들은 느끼지 못할 작은 기척까지 알아챌 정도로. 지민은 입을 쭉 내밀고는 불만을 토로했다. 아저씨가 지나치게 예민한 거죠! 남자는 말없이 다가와 아직 손잡이를 꽉 붙잡고 있는 지민의 손에서 칼을 빼냈다. 보기 좋게 찢긴 매트리스가 벌어져 속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민은 아쉬움에 작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깼는데 뭐라도 먹을래?"


  방금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아이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지민은 익숙한 듯 고개를 휘휘 저었다. 됐어요! 자신의 실패에 대한 심통을 부리는 중이었다. 고작 열다섯의 아이는. 윤기는 소리 없이 웃으며 매트리스와 함께 찢긴 침대보를 걷어 냈다. 매트리스를 새로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살벌하게 칼자국이 나버렸다. 그냥 매트리스 사는 걸 그만둬야 하나. 윤기는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시퍼렇게 빛나는 칼을 자신의 심장에 꽂아 넣으려던 아이의 앞에서 무방비하게 생각했다. 


  "두고 봐요, 다음에는 진짜 성공할 거니까!"


  카랑카랑한 아이의 목소리에 윤기는 나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새벽에 깨는 일 좀 없이 성공해 줬으면 좋겠네."
  "우씨, 진짜 성공할 거니까, 거 목이나 잘 닦고 계십쇼!"


  저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워왔데. 윤기는 기가 차는 와중에도 나름 진지하게 표정을 굳힌 아이의 얼굴이 귀여워 피식 웃었다. 지민이 웃지 말라며 눈을 흘긴다. 윤기는 어깨를 으쓱하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지민은 윤기의 침대 위에서 내려왔다. 윤기가 뺏어간 칼은 윤기의 뒤쪽 탁자 위에 놓여있었다. 칼을 힐끔거리다가 방을 나섰다. 


  "안녕히 주무세요."


  예의 바른 인사는 덤이었다. 그래. 닫히는 문틈 사이로 덤덤한 윤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지민이 윤기를 처음 만난 것은 6년 전이었다. 바람이 슬슬 선선해지기 시작하던 가을의 어느 날, 유난히도 들뜨던 날. 자신의 생일에 지민은 피로 물든 생일상 앞에서 윤기와 처음 만났다. 멍하니 걸어 나오는 어린아이의 모습에도 윤기는 놀란 기색 같은 걸 보이지 않았다. 지루해 죽겠다는 무심한 얼굴로 손에 묻은 피를 닦으며 지민을 바라봤다. 무심한 눈동자가 자신에게로 향했지만, 지민은 무섭다거나 하지 않았다. 꼭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현실감이 없는 광경이었다. 


  "생일이니."


  시선만큼이나 건조한 목소리였다. 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윤기의 시선이 뭉개진 생크림 케이크에 짧게 닿았다 떨어졌다. 울지 않고 두 손을 꽉 쥔 채로 자신을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눈빛에선 어떤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흔히 보일 분노, 슬픔, 원망, 공포 그 어떠한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꿈을 꾸는 듯 몽롱한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윤기는 아이의 앞에 무릎을 꿇고 시선을 맞춰 앉았다. 


  "내가 밉니."


  자신도 멍청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안개가 낀 것 같은 아이의 눈동자가 또렷하게 돌아왔다. 자신을 바라보는 맑은 눈동자에 윤기는 주머니에서 만지작거리던 나이프를 놓았다. 목격자는 제거한다.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수칙이었다. 매일 밤 꿈에 나와 자신의 다리를 잡아당기던 손길들 위로 가장 행복해야 할 날 부모를 잃은 아이의 얼굴이 그려졌다. 윤기는 이 지옥을 벗어나고 싶었다.


  "꼬마야."
  "……."


  충격받아 말이라도 잃은 것일까? 아이는 아까부터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말뿐만 아니라 울음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정말 소리 내는 법을 잊은 것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윤기는 아직 피가 다 닦이지 않은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날 죽여. 꼬마야. 살아서 네 손으로 아저씨를 죽이는 거야. 그러면 너는 자유야."


  아이의 어둡던 눈동자에 잠깐 빛이 들었다 사라졌다. 윤기는 아이를 데리고 엉망이 된 거실을 둘러보다 집을 나섰다. 



*    *    *



  그때부터 윤기는 지민을 키웠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아이가 된 지민은 윤기의 집에서 학교도 가지 않은 채 자라났다. 어떠한 연민의 감정이 들어서인지, 단순한 변덕인지, 죄책감인지 윤기는 지민에게 가정교사를 붙여주었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지민은 교과과정을 배울 수 있었다. 원래 머리가 좋은 건지 습득속도도 빨라서 10살의 나이에 6학년 과정까지 진도를 뗐다 했다. 지민의 가정교사 역할을 하는 남준은 아이가 영특하다며 틈만 나면 지민의 칭찬을 늘어놓았다. 나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윤기를 보며 남준이 마지막으로 하는 말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형은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그제야 남준을 바라본 윤기가 피식 웃었다. 알아, 인마. 세상에 자기를 죽일 아이를 자기 손으로 키우는 사람이 어디 있어? 윤기가 키득키득 웃었다. 여기 있잖아. 남준은 더 말하는 것을 그만뒀다. 후. 대신 한숨을 한 번 쉰 후 윤기의 앞으로 봉투를 내밀었다. 윤기는 다시 건조한 얼굴로 남준이 내민 봉투를 바라봤다.


  "이번 일."


  봉투를 꺼내 내용물을 확인하며 윤기는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역시 어느 바닥을 가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똑똑해야 해. 그렇지 않냐."
  "갑자기 또 무슨 소리야."
  "널 보면 그렇잖아."


  윤기가 보고 있던 서류를 다시 봉투에 넣고 남준을 바라봤다. 남준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나 같은 놈 말고. 너처럼 살아야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윤기가 말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우리 지민이."


  남준은 이해할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    *    *


  남준에게 교과과정을 배우는 것 외의 모든 수업은 윤기가 직접 했다. 먼저 칼을 쥐는 법을 가르쳤다. 총을 조립하고 손질하는 법도 가르쳤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에 대해 단계적으로 가르쳤다. 단숨에 숨을 끊는 방법과 고통을 줘 서서히 죽이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지민이 13살이 되는 해 지민은 처음으로 자는 윤기의 위로 올라탔다. 지민이 달려오는 것을 듣고 있던 윤기는 가만히 누워 눈을 감은 채로 지민을 기다렸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작은 아이가 뛰어들었다. 가는 손목을 잡아챈 윤기가 눈을 떴다. 파들파들 떨고 있는 아이가 눈앞에 있었다. 윤기는 아이의 손에서 칼을 뺏어 던진 후, 평소처럼 담담한 손길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쩌냐, 실패했네."


  지민은 분한 것인지 씩씩거리며 말이 없었다. 윤기는 그대로 아이를 안아 들고 부엌으로 내려왔다. 식탁에 아이를 앉혀놓고 찬장을 뒤져 비스킷 몇 개를 꺼낸 후, 우유를 데워 아이의 앞에 놓았다.


  "먹어."


  지민은 윤기를 바라보다가 자그마한 손으로 비스킷을 집어 들었다. 달콤한 맛이 나는 비스킷은 지민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윤기는 지민이 비스킷과 우유를 다 먹을 때까지 식탁에 앉아 있어 주었다. 남은 우유를 다 마신 지민이 컵을 내려놓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난 윤기는 다 먹은 그릇들을 치운 후 지민에게 칫솔을 쥐여 주었다. 


  "이 닦고 가서 자자."


  지민이 양치하는 모습을 화장실 문에 비스듬히 기대 바라보던 윤기가 작게 하품했다. 지민은 거울을 통해 윤기의 모습을 힐끔거렸다. 방금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람이라기엔 지나치게 평온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입안을 가득 채웠던 거품을 뱉고 입까지 헹구고 나자 윤기가 손을 내밀었다. 지민은 별 망설임 없이 희고 기다란 손을 잡았다. 방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이 없었다. 지민의 방 앞에 멈춰선 윤기가 방문을 열어준 후 지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잘 자라."


  지민은 꾸벅 고개를 숙여 배꼽 인사까지 한 후 방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제법 키가 크긴 했지만, 여전히 어린애였다. 윤기는 지민이 침대에 들어가 이불을 덮고 눕는 것을 확인한 후, 방문을 닫았다. 기척을 지우는 것도, 칼을 들고 달려드는 것도 엉성한 것이 가득했다. 아직 갈 길이 멀겠네.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자신의 방으로 향한 윤기가 이번에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지민은 그 후로도 38번의 암살시도를 더 했으며 번번이 보기 좋게 실패했다. 서른아홉 번째 암살시도가 실패한 날 윤기는 이 비정상적인 관계의 끝이 얼마 남지 않음을 직감했다. 



*    *    *


 
  윤기는 대부분 집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지민도 마찬가지였다. 남준에게서 수업을 듣고 이제는 윤기의 지도 없이도 지하실에서 언젠가는 윤기를 죽이기 위한 기술을 연마했다. 윤기가 집을 나서는 대신 외부인들이 집을 찾아왔다. 그들은 지민을 보면 하나같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다녀가고 얼마 후면 윤기도 집을 비웠다. 외출하고 돌아오는 윤기에게서는 대부분 피 냄새가 났다. 지민은 윤기가 외출하고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번엔 어떤 사람이었어요?"


  계단을 오르려던 윤기가 고개를 돌려 지민을 바라봤다. 여전히 나른한 표정이었다.


  "나 같은 어린애도 있었어요?"


  윤기는 올랐던 계단을 다시 내려갔다. 아직 작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없이 웃었다. 계단을 올라가는 뒷모습을 보며 지민은 윤기의 손이 닿았던 머리를 매만졌다. 지민은 윤기의 하얀 손이 자신의 작은 손 위로 겹쳐졌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이렇게 잡으면 안 되지. 예리한 나이프의 손잡이를 자신의 손에 쥐여 주며 말하는 윤기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지민은 다시 지하실로 향했다.


*    *    *


  지민은 곧잘 총을 다루는 법도, 칼을 다루는 법도 익혔다. 열여섯이 되었을 때는 눈빛도 제법 훌륭해졌다. 윤기는 그런 지민의 변화를 꽤 만족스러운 얼굴로 지켜봤다.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지 이제 열여섯이면서 중학교 과정은 모두 뗐다고 했다. 이제 고등학교 과정을 선행해도 좋을 것 같다는 말에 윤기는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형."

  할 말이 있어 보이는 표정과는 달리 남준은 윤기를 불러놓고 입을 열었다 다물기를 몇 분 동안 반복했다.

  "할 말 있으면 해."
  "애초에 뭐가 정상이고 말고 할 것도 없는 바닥이니까 아무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안 하려고 했으면 끝까지 하지 마."
  "형이 걱정돼서 그래."

  윤기의 건조한 눈동자가 남준에게로 향했다. 남준은 크게 한숨을 한 번 쉰 뒤, 윤기를 마주 봤다.

  "정드는 거 진짜 순식간이다."

  윤기가 더 해보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조금만 살 부대껴도 드는 게 정이야. 그게 고운 정이건, 미운 정이건. 근데 하물며 형은 7년을 부대꼈어."
  "그러네. 벌써 7년이네."
  "형."
  "남준아."

  윤기가 웃었다. 남준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윤기의 웃는 얼굴을 바라봤다. 

  "부탁 하나만 하자."






  "아저씨는요?"

  착잡한 마음으로 윤기의 방에서 나온 남준은 자신의 앞으로 불쑥 튀어나온 지민을 놀랜 눈으로 바라봤다. 이 시간엔 항상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없었는데 예상치 못한 지민의 등장에 의연하게 행동하려던 남준도 멈칫했다.


  "형? 형, 형 지금 쉰다니까 어…. 할 말 있니?"


  지민이 남준 너머로 굳게 닫힌 윤기의 방문을 살폈다.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에요. 안녕히 가세요."


  남준에게 인사를 건넨 뒤, 남준이 채 대답하기도 전에 지민은 몸을 홱 돌려 복도의 반대쪽으로 사라졌다. 거짓말처럼 윤기를 닮은 발걸음이었다. 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지민의 모습을 보며 남준은 조금 전 윤기가 했던 부탁을 곱씹었다. 지민이 신분 좀 만들어 주라. 남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윤기는 정말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민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윤기를 처음 만난 날부터 꼭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평생 어린 자식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부모님 같은 건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오히려 답답하기만 했던 그 집을 탈출할 수 있는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매일 밤 기도하다 잠이 들기 일쑤였다. 매일 밤 기도를 한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유일하게 화목한 척하는 날 지민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자신에게 내밀어 진 하얀 손은 꼭 닫힌 새장의 문을 열어주는 것만 같았다.


  지민은 늘 윤기를 생각했다. 건조해 보이는 눈과 나른한 표정. 가끔 풍기는 피 냄새와 마디가 굵은 하얀 손을 떠올리다 잠이 드는 날이면 바지를 적신 채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젖은 팬티와 잠옷 바지를 들고 있는 지민을 보며 윤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럴 때면 지민은 윤기에게 외치고 싶었다. 꿈에 아저씨가 나왔어요. 아저씨의 하얀 손이 나를…. 결국,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할 말이었다.




*    *    *




  지민은 열일곱이 되었다. 그동안에도 아홉 번의 암살시도를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아직 멀었다는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윤기를 보며 지민은 분함에 씩씩거렸다. 열일곱이 된 선물이라며 윤기가 지민에게 내민 것은 교복이었다. 지민은 굳은 얼굴로 윤기가 내민 교복을 받아들었다. 


  "이게 뭐예요?"
  "뭐긴, 교복이지."
  "이걸 왜 저한테 주세요?"
  "너도 이제 학교도 가고 그래야 하지 않겠냐."


  지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윤기는 덤덤한 얼굴로 지민의 표정 변화를 지켜봤다.


  "전 아직 아저씨 못 죽였는데요."
  "아직 멀었어."
  "아저씨가 죽어야 자유라면서요. 아직 아니잖아요."
  "……."


  윤기는 말이 없었다. 지민은 손에 쥔 교복 옷자락이 구겨질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윤기는 마치 넌 곧 자유가 될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지민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이야, 나는…. 결국 지민은 윤기를 두고 뒤돌아 달렸다.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걸어 잠근 후, 교복을 침대에 내팽개쳤다. 이 거대한 집이 자신의 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래전 새장의 문을 열어줬던 하얀 손이 이번에는 세상 밖으로 나가라 하고 있었다. 지민은 벽에 기댄 채 웅크려 앉았다.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학교에 가게 된 이후에도 지민의 생활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지민은 학교 가는 것을 제외하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며, 여전히 오랜 시간을 지하실에서 보냈다. 윤기는 천천히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평생 사람을 죽여 모은 돈을 지민의 명의로 만들어진 통장에 넣었다. 자신이 죽으면 집 명의 또한 지민에게로 넘어갈 수 있게 준비를 해뒀다. 지민은 똑똑한 아이니까 별로 걱정은 되지 않았다.


  지민의 암살시도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오십 여덟 번째 암살시도가 있었던 날, 드디어 윤기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에 성공했다. 윤기는 피가 새어 나오는 자신의 팔을 붙잡고 웃었다. 지민은 이제 제법 자신과 키도 비슷했다. 환하게 웃는 얼굴에 지민은 입술을 꽉 물었다.

  "많이 컸다, 꼬마. 언제 이렇게 컸냐."

  꼭 토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지민은 울렁거리는 감정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도망쳤다. 그 날 밤 꿈에는 윤기가 나왔다. 





  자신의 몸을 매만지던 하얀 손이, 아래를 파고드는 뜨거움도 꼭 현실인 것처럼 생생했다. 지민은 멍하니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어젯밤 꿈속, 자신은 윤기와 섹스를 했다. 아주 끈적하고도 격렬한 섹스였다. 뒤를 파고드는 윤기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했다. 지민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젖은 속옷을 휴지통에 던져넣은 후 학교 갈 준비를 했다. 항상 혼자 먹던 아침상에 익숙한 뒷모습이 앉아 있었다.


  "……."
  "빨리 와서 밥 먹어라. 늦겠다."


  윤기의 하얀 팔 위로 붕대가 감겨 있었다. 지민은 울렁거리는 기분에 입을 틀어막은 채 뒤돌아섰다.


  "지민아."


  윤기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속에 있는 것을 모조리 토할 것 같은 감각에 지민은 뛰었다. 



  윤기는 말도 없이 뛰어나간 지민의 등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봤다. 정드는 거 진짜 순식간이다. 언젠가 남준이 했던 말이 자꾸 머리에서 윙윙거리며 울렸다. 윤기는 수저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맛이 없었다.






  지민이 그 날 이후로 밤에 윤기를 찾아오는 일은 사라졌다. 암살시도를 완전히 멈춘 것이다. 완전히 방에 틀어박혀 있는 아이를 보며 윤기는 마른 입술을 핥았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는 듯했다.



*    *    *



  다음 날, 윤기는 지민을 불렀다. 지민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윤기의 뒤를 따랐다. 침대에 걸터앉은 윤기가 지민에게 건넨 것은 총이었다. 지민은 처음 교복을 받았던 날보다도 더 굳은 얼굴로 윤기를 바라봤다. 윤기는 지독히도 나른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에게 기회를 주는 거야. 나는 아무것도 안 할 거고 너는 그냥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돼. …싫어요. 지민이 처음으로 보이는 거부 의사였다. 윤기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무기력한 표정으로 지민을 보다가 한숨을 푹 내쉴 뿐이었다.


  "왜."
  "저는, 아저씨…."
  "이제 와서."
  "…."
  "사랑이라도 했다고."
  "…나는요."
  "사랑이라도 하자고. 우리 둘이?"
  "…꿈에 아저씨가 나왔어요."
  "쏴 죽이지 그랬어."
  "아저씨랑 뭐 했는지 알아요?"
  "마지막 기회야. 총알은 여섯 개 들었어."
  "사랑, 사랑을 했어요."
  "그 총알이 다 떨어지면 내가 널 죽일 거야."
  "사랑해요."
  "……."
  "아저씨 손에 죽어도 좋아."


  윤기는 고개를 돌려 지민의 시선을 피했다. 오래전 지민을 처음 만난 날 봤던 그 눈빛이었다. 윤기는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아 입술을 씹었다. 


  "꼬마야."
  "사랑해달라곤 하지 않을게요."
  "이게 널 위한 거로 생각해?"
  "……."
  "이건 나를 위한 거야. 이기적인 날 위해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래서 너에게 씻을 수 없는 기억을 안겨 주고 네가 살아야 했을 찬란한 삶과는 다른 삶을 짊어지게 만든 거야."
  "……."


  밤마다 시달리던 악몽은 지민을 만난 이후로 줄어들었다. 꿈속에서 윤기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지민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으니까. 편안한 밤이 지속 되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심장에 칼을 꽂아 넣는 꿈속의 지민에게 입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전까진. 윤기는 말없이 선 지민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넌 똑똑하니까 아저씨 말 알겠지."
  "……."
  "당겨."


  더 미련이 생기기 전에 끝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충분히 자랐고, 혼자서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똑똑하다니까 학교도 가고,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끝까지 이기적인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동자에서 생기가 꺼져갔다. 


  "모르셨구나, 아저씨."
  "……."
  "나 보기보다 머리 나쁜데."


  지민이 방아쇠를 윤기에게 겨누는 대신 자신의 머리로 향하게 했다. 언제나 건조하기만 하던 윤기의 눈이 다른 감정으로 물들었다. 윤기는 침대에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지민에게로 달렸다. 탕. 총성이 고요한 저택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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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의 돌이킬 수 없는 듣다가 너무 보고 싶어져서 그만...슈짐의 이런 위태로운 분위기도 너무 좋아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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