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14 12:11

[국민] 낭만 캠퍼스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피아노 포엠 - 난 니가 참 마음에 든다



낭만 캠퍼스
전정국 박지민





  새벽까지 위장으로 들이부었던 술이 모조리 역류하는 감각에 정국은 눈을 번쩍 떴다. “어이씨, 깜짝이야.” 과방 한구석에 죽은 듯 누워있던 정국이 갑자기 눈을 뜨니 뿅뿅거리며 폰게임을 하고 있던 태형이 귀신이라도 본듯한 얼굴로 손에서 핸드폰을 놓쳤다. 적잖이 놀란 태형이 뭐라 툴툴거렸지만, 그 툴툴거림을 받아줄 여유가 정국에게는 없었다. 부글거리는 속이 예감이 좋지 않아 벌떡 직각으로 일어나 앉았는데, 그게 또 얼마나 기운찼는지 울렁거리는 속은 마치 마구 흔들어 놓은 콜라병 같았다. 


  “야, 니 괜찮나?”


  심상치 않은 표정에 태형이 큰 눈을 껌뻑이며 걱정스럽게 물어오는 순간 정국은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하며 과방을 박차고 나갔다.


  “전정국이!!”


  자신의 신발을 신고 뛰어나가는 정국을 태형이 불러세웠지만, 정국의 뱃속에 자리한 마구 흔든 콜라병이 곧 폭발 직전이었기에 정국은 태형의 불음에 응해줄 수 없었다. 눈 뜨고 저번 주말에 산 신상 운동화를 잃은 태형이 허망한 표정으로 정국이 나간 과방 문을 바라봤다.


  “우웨엑.” 


  화장실에 도착해 변기를 부여잡음과 동시에 정국은 요란하게 속을 비워내기 시작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술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맑은 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정국의 신발을 대신 꿰어신고 쫓아온 태형이 칸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란 얼굴로 문을 쾅쾅 두드렸다.


  “야! 전정국이! 괜찮냐고!”


  다급한 노크 소리에 정국이 대충 괜찮다는 뜻으로 문을 쾅 쳤다. 태형이 문을 두드리던 것을 멈추고 문을 노려봤다.


  “왜 성질인데!”


  성질을 부리는 것을 보니 그래도 괜찮은 모양이었다. 태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문 옆에 비스듬히 기대섰다. 곧 물이 내려가는 소리가 나고 열린 문 사이로 한결 편안해진 표정의 정국이 나타났다. 태형은 얄미운 후배를 한 대 쥐어박으려다가 방금까지 내장을 토할 듯 요란하게 구토하던 정국이 생각나 입맛만 쩝 다셨다. 


  “나는 너 그러다가 진짜 내장 토하는 줄 알았다.”


  세면대에 서서 입을 헹구고 있는 정국의 모습을 보며 태형이 말했다. 정국의 커다란 눈이 거울을 통해 뒤에 서 있는 태형에게로 향했다. ‘근데 형 여기 왜 있어요?’ 꼭 그렇게 말하고 있는 정국의 눈빛에 태형은 역시 아까 한 대 쥐어박았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니가.”
  “…퉤. 제가 뭘요?”


  입을 헹군 정국이 태형을 돌아봤다. 


  “내 신발 신고 갔잖아. 주말에 사고 이제 두 번째로 신는 건데!”
  “아.”
  “아, 는 무슨. 빨랑 벗어.”
  “저는 뭐 신어요?”


  태형이 발을 들어 신고 왔던 신발을 정국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정국이 머리를 긁적이며 순순히 신발을 벗었다. 코앞에 과방을 놔두고 굳이 화장실에서 신발을 바꿔 신은 후, 태형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화장실을 나섰다. 


  “무슨 학교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술을 그렇게 마시고 과방에서 잠을 자?”
  “팔팔할 때 해야죠. 형은 이제 못하잖아요.”
  “아, 이게 진짜! 내가 왜 못해!”


  발끈하는 태형을 뒤로하고 과방으로 돌아와 폰을 확인하자 카톡들이 쏟아졌다. 오늘이 공강이라 다행이었다. 열 통이 넘게 와 있는 부재중 전화에 의아한 표정으로 확인하던 정국이 헉 소리를 내며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허둥거리는 정국을 의아한 눈으로 보던 태형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정국은 우당탕거리며 과방 한구석에 늘어져 있는 짐을 서둘러 챙기기 시작했다. 


  “얌마, 니 이제 내 말도 씹네? 선배 말도 씹고 전정국이 많이 컸다?”
  “아, 잠깐만요.”
  “뭐? 잠깐만요?”
  “여보, 여보세요?”


  태형은 이번에야말로 한 대 쥐어박으려고 했던 마음을 곱게 접으며 입맛만 쩝 다셨다.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통화하기 시작한 정국 때문이었다. 뭐, 부모님한테 혼나기라도 하나 보지. 흥미를 잃은 태형이 과방 한구석의 소파에 풀썩 앉아 아까 하다 꺼진 폰게임을 켰다. 


  “어제는…제가 좀…혹시 많이 기다리셨어요?”


  부모님은 아닌 것 같은데. 태형은 힐끔 정국을 올려다봤다가 다시 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디 연애하는 사람이라도 생겼나.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후배를 놀릴 거리가 생겼다는 생각에 태형은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아, 아니에요. 저 지금 학교니까 그쪽으로 갈게요, 형.”


  형? 의외의 호칭에 태형이 고개를 들어 흥미로운 얼굴로 쩔쩔매며 통화를 하는 정국의 얼굴을 살폈다. 한 마디를 지지 않던 그 전정국이 맞는지 태형은 어이가 없어서 입을 헤 벌렸다. 통화를 마친 정국이 멍청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태형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저 가볼게요.”


  심지어 정중하게 인사까지 했다. 이게 무슨 일이래. 태형이 큰 눈을 깜빡이며 3월 초에나 잠깐 봤던 예의 바른 모습의 정국에게 어색하게 손을 휘적거렸다. 미련 없이 돌아선 정국이 과방 문을 닫고 나서야 태형은 방금 제가 본 것이 전정국이 맞는가 생각했다.



*    *    *


  과방을 뛰쳐나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던 정국은 문득 아까 화장실에서 마주했던 자신의 몰골이 생각나 울상이 되었다. 자취방까지 다녀오기에는 시간이 빠듯해 보였다. 으아, 어쩌지.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쥐어뜯으며 정국은 죄 없는 입술만 물어뜯었다. 한참을 제자리에 멈춰서 머리만 뜯던 정국은 결국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네, 형. 그…제가 뭘 좀 놓고 와서 집에 갔다 와야 할 것 같은데…. 아, 이제 수업 들어가세요? 그럼 수업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갈게요. …네?”


  한참 통화를 하며 바쁘게 걸음을 옮기던 정국이 놀란 얼굴을 한 채로 자리에 멈춰 섰다. 어, 어…. 당황하는 사이 통화가 끊겼다. 멍하니 꺼진 화면만 바라보던 정국이 다급하게 멈춰있던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내가 마치고 너희 집 쪽으로 갈게. 엇, 교수님 오셨다.’ 귓가에 들리던 미성이 떠나지를 않았다. 정국은 마지막으로 청소를 언제 했는지 같은 것을 떠올리며 학교 정문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집을 향해 달렸다. 



**



  대학에 입학함과 동시에 자취를 시작한 것은 정국에겐 나름대로 작은 일탈이었다. 누군가의 간섭이 없이 온전한 자신의 공간은 비록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의 방보단 좁을지언정 아늑하고 편안했다. 그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에 정국은 여태까지 다른 사람을 들인 적이 없었다. 겉보기엔 정돈이 잘 된 방의 모습에 평소에 나름대로 부지런히 정리해두길 잘했다고 정국은 과거의 자신을 칭찬했다.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정국은 원룸 방에 딸린 자그마한 화장실로 향했다. 미적지근한 물로 샤워하고 꼼꼼하게 스킨과 로션을 찾아 발랐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썩 나쁘지 않아 보였다. 깔끔하게 정돈된 방도 만족스러웠다. 흐뭇하게 방을 둘러보던 정국이 뭔가 생각났는지 방 한편에 자리한 책상으로 다가가 노트북의 전원을 켜고 책을 펼쳐놓았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카톡이 왔다.


  「정국아」
  「네」


  카톡이 오기가 무섭게 답장을 한 정국은 너무 일찍 답했나. 너무 딱딱했나. 같은 고민을 하며 1이 사라진 카톡창을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이제 마쳐서 내려가려고 하는데 어디쯤이랬지?」


  정국은 기다릴 것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을 보고 있었던 듯 수화음이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고운 목소리가 들렸다. 


  — 여보세요?

  “제가 정문 쪽으로 나갈게요, 형.”

  — 어, 그래 줄래? 내가 찾아가도 되는데.

  “아니에요. 코앞인데 은근 복잡해서요.”


  사실 그렇게 복잡한 길은 아니었지만, 정국은 이미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고 있었다. 


  — 응, 그래. 그럼 조금 이따 보자.


  끊긴 전화에 감출 수 없는 미소를 띤 채로 정국은 집을 나섰다. 정문 앞에 선 채로 핸드폰의 셀카모드를 켜 잘생긴 얼굴을 확인하기를 잠시, 벚꽃색으로 물든 머리가 정국의 앞에 멈춰 섰다. 


  “오래 기다렸어?”


  그렇게 물으며 웃는 얼굴에 정국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이 천사인가 싶어 큰 눈만 껌뻑였다. 


  “정국아?”


  자신을 빤히 보고만 있는 정국의 모습에 지민이 의아한 듯 물었다. 


  “네, 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그냥 조금. 형 머리색 진짜 예쁘네요.”
  “정말? 해놓고도 좀 민망했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지민이 웃었다. 정국은 또 넋을 놓고 바라보고만 있을 것 같아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댔다. 


  “이쪽, 이쪽이에요.”


  정국이 다급하게 지민을 자취방이 있는 쪽으로 이끌었다. 지민은 빨개진 정국의 뒷목을 보며 얌전히 손목을 내준 채로 뒤를 따랐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길을 보며 지민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정국은 떨리는 손으로 현관 비밀번호를 꾹꾹 눌렀다. 띠링 소리와 함께 열린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당기자 깔끔하게 정리된 방이 보였다. 


  “들어, 들어오세요.”
  “응. 실례하겠습니다.”


  정국의 뒤를 따라 들어온 지민이 방을 둘러보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방이 어딘가 정국을 닮아있어서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정국이 의아한 표정으로 지민을 돌아보았다.


  “우와, 방 깔끔하다.”


  눈을 빛내며 그렇게 말하는 지민의 모습에 정국이 쑥스러운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형이 처음이에요.”
  “응?”
  “제 방에 온 사람. 부모님 빼곤 없었거든요.”


  조금 의외라는 표정으로 정국을 바라보던 지민의 눈이 이내 휘어졌다. 정국은 잠시 넋을 놓고 그 웃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    *    *



  3월. 갓 스물이 된 정국에게 캠퍼스는 로망이 가득한 곳이었다. 설렘을 안고 들어간 강의실에서 정국은 눈이 부신 낭만을 만났다. 오티를 진행하는 교수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힐끔거리는 시선은 계속 낭만을 쫓았다. 주변의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작게 웃는 모습에 정국의 가슴 한편에 봄바람이 불었다. 


  “…강의 진행 방식은 이렇고……중간고사는 조별과제로 대신하게 될 것입니다.”


  조별과제라는 말에 학생들이 술렁였다. 아, 원래 조별과제 없는 수업이라 신청했는데. 앞자리에 앉은 학생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며 정국은 환하게 웃었다. 조는 각자 짜서 제출하고 가라는 교수의 말에 강의실이 소란스러워졌다. 정국은 조용히 눈치를 살피다가 부족한 인원수를 어떻게 채우나 고민하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낯선 얼굴의 등장에 시선이 정국에게로 쏠렸다. 큰일 났다. 이제 뭐라고 말해야 하지. 뒷일은 생각하지 않은 정국이 눈을 도르륵 굴렸다. 음, 그러니까….


  “괜찮으시면 같이 해도 될까요.”
  “그럼.”


  다행히도 그와 그 친구들은 흔쾌히 정국을 받아들였다. 되려 인원수가 채워졌다며 좋아하기까지 했다. 


  낭만의 이름은 지민이었다. 지민. 꼭 자기처럼 예쁜 이름이라고 정국은 생각했다. 자기소개는 한 바퀴를 돌아 정국의 차례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정외과 신입생 전정국이라고 합니다.”
  “정외과?”


  정국을 바라보고 있던 남준이 되물었다. 정국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준이 이번에는 지민에게 물었다.


  “태형이 정외과 아니었냐?”
  “아! 맞다. 정외과에 내 친구 있어!”


  지민이 반가운 얼굴로 정국을 바라보며 환히 웃었다. 정국은 큰 눈을 두어 번 깜빡이며 웃는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아…소리를 냈다. 


  “누구…?”
  “김태형이라고 있는데. 아, 얘 감기 걸려서 오티 못 갔으니까 모를 수도 있겠다.”
  “아아….”


  크게 관심이 없었기에 정국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만나면 인사드릴게요. 너무 싸가지 없는 것 같아서 형식적인 말을 덧붙였다. 조금 이상해 보여도 좋은 애야. 지민이 웃었다. 지금 정국에게 있어선 자신의 과 선배가 어떤 사람인지는 별로 중요치 않았다. 


  “정국아, 잘 가!”


  명단을 제출하고 강의실을 나가는데 고운 목소리가 정국을 불러세웠다. 강의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등지고 선 지민이 밝게 웃으며 손을 붕붕 흔들었다. 정국은 입을 헤 벌리고 있다가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대학에 입학한 지 첫 주, 정국은 캠퍼스의 낭만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그 다음 날은 개강총회가 있는 날이었고, 정국은 그곳에서 태형을 만날 수 있었다. 전정국이 누구야? 테이블에 찾아와서 다짜고짜 정국을 찾는 태형에 아직 긴장한 채로 앉아있던 새내기들의 시선이 모두 정국에게로 쏠렸다. 


  “전데요.”


  정국이 손을 들어 보이며 태형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에 인상이 세 보이는 선배의 등장에 안 그래도 어색함이 가득했던 테이블이 얼어붙었다. 정국은 자신이 뭘 잘못했던가 잠시 고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짚이는 점이 없었다. 


  “니가 전정국이야?”
  “네.”


  뭐야, 쟤 뭐 선배한테 잘못한 거 있어? 옆에서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는 동기들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정국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태형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받아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잘못한 점이 없으니 무서울 게 없었다. 되려 같은 테이블에 있던 정국의 동기들만이 태형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얼어붙어 있는 분위기를 깬 것은 태형 본인이었다. 히, 하고 웃어 보인 태형이 정국의 옆에 턱 앉아 손을 내밀었다.


  “반갑다.”
  “예, 예?”
  “난 김태형.”


  정국은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어디서 들은 이름이었더라 생각하다가 곧 어제 지민의 말이 떠올랐다. 같은 과에 다니는 지민의 친구. 그제야 아, 하고 기운 빠지는 감탄사를 내뱉은 정국이 태형의 손을 잡았다. 태형이 다시 빙구 같은 웃음을 지으며 히, 웃었다. 정말이지 웃는 것과 웃지 않는 것의 갭이 엄청난 사람이었다. 



**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달이 지났다. 새내기들이 캠퍼스를 마음껏 즐기기도 전에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조별과제 모임이 점점 잦아졌지만, 정국은 하나도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번에 와서 조별과제로 시험을 대체한 교수님에게 뽀뽀라도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민과 같이 PPT를 맡게 된 덕분에 지민과 단둘이서 카페에서 만난 이후로 교수에게 뽀뽀를 날리고 싶은 정국의 마음은 점점 커졌다. 


  어제는 모두 대학 첫 시험 잘 치자는 명분으로 동기들끼리 모여 술을 한잔 했다. 시험 잘 치자는 것은 핑계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는 중간, 지민에게서 연락이 왔다. PPT를 빨리 마무리해줘야 발표할 사람이 준비할 것 같아서 시간 되면 만나서 완성하자는 내용이었다. 정국은 취한 와중에도 핸드폰에 뜬 지민의 이름에 정신을 차리고 카톡을 확인했다. 또박또박 ‘지금 잠깐 밖에 나와 있어서 집 들어가면 연락드릴게요.’ 라고 전송한 후 정국은 다시 술에 취해 흐리멍덩한 눈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과방으로 향해 또 술을 깐 다음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 덕에 지민이 지금 자신의 방에 있었다. 정국은 작은 원룸의 부엌으로 추정되는 곳을 부산스럽게 돌아다녔다. 평소 밥을 먹던 탁상까지 펴고 그 위로 집에 있던 온갖 과자며 주스를 늘어놓았다. 뭘 이렇게 많이 꺼내냐는 지민의 말에 멋쩍게 웃은 정국이 지민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때 어디까지 만들었다고 했지?”
  “아, 월요일에 정리했던 곳까진 다 했어요.”
  “진짜?”


  지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국을 바라봤다. 


  “혼자 하긴 많았을 텐데….”
  “괜찮아요. 형이 정리를 잘 해두셔서 금방 했어요. 진짜예요.”


  얼마 걸리지 않았음을 강조한 정국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노트북을 들고 왔다. 조금 정리해서 단톡방에 보내면 되겠다고 생각을 하던 지민은 정국이 만들어온 PPT를 보곤 눈이 휘둥그레졌다. 


  “딱히 고칠 부분도 없는 것 같은데? PPT 만들어 본 적 있어?”
  “처음 해봐요.”
  “처음?”


  우와. 연신 감탄을 하는 작은 입술을 보며 정국은 부끄러운 듯 뒷목을 만지작거렸다. 





  PPT를 수정할 필요가 없었기에 금방 완성본까지 만들 수 있었다. 다했다! 기지개를 쭉 켜는 지민을 보며 잠시 고민하던 정국이 조심스럽게 지민을 불렀다.


  “형….”
  “응?”
  “어, 그, 라면, 라면 먹고 가실래요?”
  “…뭐?”


  지민의 조금 황당하다는 표정을 본 정국이 그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 동공을 이리저리 굴렸다. 아. 멍청한 탄식은 덤이었다. 


  “아, 아니 그, 저녁 시간이니까….”
  “너 라면 잘 끓여?”
  “예, 예?”
  “어디 맛있게 끓여줘 봐!”


  지민이 탁자를 통통 두들겼다. 정국은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덩치는 자기보다 한참은 큰 정국은 참 귀여운 후배였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기를 잠시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풍겨왔다. 절로 입에 침이 고였다. 지민은 탁자 위에 늘어져 있는 자료들과 노트북을 바닥으로 내렸다. 곧 김이 모락모락 나는 냄비를 들고 온 정국이 탁자 위에 조심히 냄비를 올렸다. 


  “우와. 맛있겠다. 잘 먹을게.”


  지민이 라면을 먹는 모습을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지켜보던 정국은 맛있다면서 웃는 얼굴을 보고서야 마음을 놓고 젓가락을 들 수 있었다. 후루룩거리는 소리가 둘 사이를 메웠다. 


  “그럼 이것도 내가 처음이겠네?”
  “예?”
  “여기서 라면 먹고 간 사람!”


  자신의 말에 귀가 벌게진 정국이 귀여워서 지민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럼 갈게. 오늘 고마웠어. 라면도 끓여주고.”
  “아니에요. 형 덕분에 PPT도 금방 만든 것 같고. 감사해요.”


  방 안을 한 번 훑어본 지민이 안 나와도 된다며 따라 나오려는 정국을 말린 후 운동화를 신고 방을 나섰다. 안녕. 다음 강의시간에 보자. 손을 붕붕 흔드는 지민에게 정국도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문이 닫히고 나자 정국은 바닥에 주저앉아 ‘지민이형 너무 귀여워….’ 하고 웅얼거렸다. 


  지민이 돌아간 방을 정리하던 정국은 콘센트에 꽂혀 있는 낯선 충전기를 발견하였다. 아까 콘센트 좀 써도 되냐고 지민이 물었던 것이 떠올랐다. 

  「형」
  「어 정국아 안 그래도 연락하려고 했는데ㅠㅠ」
  「충전기 두고 가셨죠?」
  「응ㅠㅠ」
  「ㅠㅠ이렇게 중요한 걸 두고 가시면 어떡해요!」


  칼답장이 오던 화면이 잠잠했다. 정국은 입을 삐죽이며 답이 없는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도착한 메시지에 그렇지 않아도 크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떠졌다.


  「널 다시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여지를 두고 갔나 봐」


  정국은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게 꿈은 아닌지 정말 지민이 보낸 건지 눈을 비벼가며 몇 번이나 확인했다. 정국이 그러고 있는 사이 지민으로부터 또 메시지가 왔다.


  「내일 전에 만났던 카페에서 볼까? 충전기 챙겨와 줘ㅠㅠ~」
  「네, 네. 당연하죠. 꼭 챙겨갈게요.」
  「고마워. 3교시 공강이랬던가?」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응?」
  「전에 말해줬잖아ㅎㅎ형 이런 거 기억 잘해!」
  「그럼 내일 3교시에 보자.」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꽃놀이를 가기에는 조금 늦었지만, 정국의 마음속은 이미 꽃밭이었다. 





(+)

  1

  “뭐? 박지민이 남 공강이 언제인지 그런 걸 기억을 잘한다고?”


  태형은 코웃음을 쳤다. 정국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똘망똘망한 눈으로 태형을 바라보았다.


  “근데 지민이형 제 공강은 다 기억하시던데요?”
  “웩.”


  토하는 시늉을 한 태형이 빈 잔에 술을 채웠다. 그래 커퀴들아 잘 먹고 잘살아라. 정국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뻐큐를 날리며 태형은 술잔을 기울였다. 오늘따라 술이 참 썼다.





  2
 
  “난 처음부터 딱 알았어.”
  “뭐를요?”
  “아, 이놈이 지민이한테 흑심이 있구나.”
  “그걸 어떻게 알아요. 뻥 치지 마요.”
  “정국이 처음 봤을 땐 참 착했는데 말이야.”


  남준과 호석이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국은 못마땅한 듯 뚱한 표정으로 그런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입생이 갑자기 와서 저도 같이해도 되나요? 이러면서. 우리는 안중에도 없고 지민이만 쳐다보냐?”


  남준의 말이 일리가 있어 정국은 입술을 삐죽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떡해요. 지민이형 혼자 눈에 확 뛰는데.”


  야, 이 새끼는 그냥 답이 없어. 둘이 다 해먹어라. 술잔을 기울이는 두 사람을 보며 정국은 애꿎은 소시지만 젓가락으로 쿡쿡 쑤셔댔다. 






-
분명 쓰기 시작할 때는 꽃이 피고 있었는데 벌써 다 져버렸네요…. 캠게 제가 참 좋아하는데요! 사실 이 글은 지민이가 보낸 「널 다시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여지를 두고 갔나 봐」 에서 시작되었어요. 둘은 알콩달콩 연애를 할겁니다. 아마두….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SHORT 효단 2018.03.14
9 [슈짐] 고백을 바로 합시다 효단 2018.07.28
8 [슈짐] 주차를 바로 합시다 효단 2018.07.28
7 [진지] 쿨 시그널 1 효단 2018.03.14
6 [슈짐] 안아줘 효단 2018.03.14
5 [국민] 체리콕 下 효단 2018.03.14
4 [국민] 체리콕 上 효단 2018.03.14
3 [슈짐] 돌이킬 수 없는 1 효단 2018.03.14
» [국민] 낭만 캠퍼스 효단 2018.03.14
1 [슈짐] Take it slow 효단 2018.03.14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