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14 12:09

[슈짐] Take it s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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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ie Puth - River



Take it slow
민윤기 박지민



  지민의 인생은 빈말로라도 좋은 삶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삶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보육원을 나갈 나이는 다가오고 있었지만, 앞길이 막막하던 어느 날 먼저 보육원을 나갔던 형들을 우연히 만나면서 지금 하는 일들을 소개받았다. 미성년자 딱지를 떼는 날, 소박한 짐을 챙겨 보육원을 나온 지민은 클럽 한구석의 쪽방에서 생활하며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청소하고 서빙을 하는 듯 잡다한 일들을 맡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심부름들도 겸하게 되었다. 


  심부름이라고 해봤자 뭘 대신 전달해주거나 물건을 대신 받아오거나 하는 정도였다. 심부름비도 꽤 짭짤했기 때문에 지민은 현재 상황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누워 잘 곳 있고, 밥도 굶지 않고, 일자리도 있었다. 이 정도면 괜찮은 삶이 아닌가, 지민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었다. 평소의 지민은 클럽에서 웨이터로 일하고 있었다. 


  일에 별 불만이 없다고 하더라도 힘들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기에 지민은 기회를 살피다가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바깥바람이라도 쐬며 쉴 생각이었다. 좁고 어두운 골목이었지만 클럽 안에만 계속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문 옆에 쭈그리고 앉아 휴식을 막 취하기 시작했을 때, 골목 안쪽에 누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뒷문은 직원들만 이용할 수 있었기에 처음에는 같이 일하는 사람이려니 생각했으나 얼핏 본 옷이 유니폼도 아니었기에 지민은 의아한 얼굴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저, 뒷문은 직원 전용이라 이쪽에 계시면 안 돼요.”


  남자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지민은 통화 중에 말을 건 것이 미안해서 고개를 슬쩍 숙였다. 남자는 지민을 계속 빤히 바라보면서 통화를 이어갔다. 지금 자기 통화하는데 말 걸었다고 저렇게 노려보는 건가? 지민은 보기보다 더 졸보였기에 잔뜩 움츠러든 채로 하하하,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남자는 몇 마디를 더 하더니 통화가 끝났는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통화가 끝났음에도 지민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지민은 손만 꼼지락거리며 웃었다. 그런 지민을 바라보며 남자가 툭 물었다.


  “여기서 일해?”


  왜 반말이야. 차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기에 지민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남자는 그런 지민을 보며 고개를 몇 번 까딱이더니 별다른 말 없이 지민을 스쳐 뒷문으로 들어갔다. 


  “다음부터는 뒷문으로 나오시면 안 돼요!”


  문이 닫혔다.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왜 보자마자 반말이야. 앞에서는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구시렁거리며 지민도 뒷문으로 향했다. 






  들어오자마자 일이 쏟아져 들어왔다. 지민은 정신없이 이 방, 저 방을 뛰어다녔다. 이제는 안주를 나르고 빈 그릇을 치우는 일에 아주 능숙해졌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무거운 그릇들을 끙끙거리며 옮기고 가끔 사고를 치기도 했는데 크나큰 발전이라고 같이 일하는 형들이 감탄할 때마다 지민은 그저 좋다고 웃었다. 


  “지민아 이거 1번 방으로 서빙.”


  조금 숨을 돌리나 싶었는데 또 주문이 들어왔다. 심지어 1번 방은 VVIP룸이었다. 한 번도 VVIP룸으로 서빙을 가 본 적은 없었기에 지민은 살짝 긴장했다. 실수하면 안 될 텐데. 서빙에는 이제 능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가는 VVIP룸에 심장이 쿵쾅거리고 긴장되기 시작했다. 
한 번 심호흡을 한 후 룸의 문을 열었다. 


  VVIP룸 답게 넓고 화려한 내부가 지민의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에 안주를 무사히 내려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려는 지민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방금 뒷문에서 만났던 남자였다. 돈 많은 사람이었구나. VVIP룸을 줄 정도 고객의 얼굴을 일하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게 의아하긴 했지만 마주치는 시간이 엇갈렸겠거니 싶었다. 표정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지민은 어째서인지 억울해졌다. 비슷한 나이 또래지만 한 명은 서빙이나 하고 있고, 한 명은 VVIP룸에서 팔자 좋게 놀고먹는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하며 인사를 꾸벅하고 나가려는데 남자가 자신을 불러세웠다.


  “야.”
  “저요?”


  자신을 부르는 소리겠지만, 순순히 대답하기가 싫었던 지민은 굳이 나를 불렀냐는 표정으로 남자에게 되물었다. 자꾸 반말하는 것도 짜증이 났다. 


  “너 말고 또 누가 있는데.”


  들려오는 답은 더 짜증 나게 하였지만 지민은 그 짜증을 표현할 수 없는 위치였다. 심지어 자신에게 오라는 듯 손을 까닥이는 모양새에 저 하얀 손가락을 꺾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누르며 지민은 방긋 웃는 얼굴로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아예 소파에 기대앉아 다리까지 꼬고 고개를 기울인 채로 지민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몇 살이야?”
  “스물셋이요.”


  여전히 건방진 태도에 지민은 이를 꽉 문 채로 대답했다. 


  “이름은?”
  “MIN이요.”
  “미니?”
  “아니, 민! 이요.”


  지민은 민이라고 강조하여 말하며 명찰을 가리켰다. 이름 뭐로 할래? 찰스? 마크? 처음 온 날 묻는 말에 지민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냥 지민이로는 안 돼요?’라고 물었었다. 매니저는 지민의 말을 듣더니 웃었다. ‘그럼 그냥 MIN이라고 해.’ 그렇게 지민은 MIN이라는 이름을 명찰에 새기게 되었다. 윤기는 지민의 손가락을 따라 명찰을 한 번 훑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 봐.”
  “네?”
  “나가 보라고.”


  말귀 못 알아듣냐는 눈빛에 지민은 입을 삐죽이다 윤기와 눈이 마주치자 또 눈이 휘어지라 웃으며 인사를 했다. 진짜 재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대기실로 돌아온 지민은 툴툴거리기 바빴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었기에 주변의 형들은 형식적인 위로의 말을 지민에게 건넸다. 생긴 건 꼭 여우 닮아서는. 입을 삐죽이던 지민은 곧 밀려오는 주문에 정신이 없어 윤기에 관한 것은 모두 잊어버렸다. 



*    *    *



  오랜만에 휴일을 맞이했단 것은 또 어떻게 알았는지 심부름 거리를 주던 형이 지민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모처럼의 휴일인데 뭘 하고 보낼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던 지민이 도끼눈이 되어 열린 방문을 바라봤다. 전혀 달갑지 않은 사람의 등장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번에는 또 뭔데. 나 좀 쉬자, 형.”


  평소라면 쉬긴 뭘 쉬냐고 타박했을 불청객이 오늘따라 조용했다. 지민은 드디어 저 형이 피곤한 자신의 상황을 알아주는 건가 싶어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그러나 정확히 삼 초 뒤, 지민은 그 생각을 거두어야 했다. 오늘따라 조용한 불청객의 뒤로 덩치가 크고 험악하게 생긴 남자 둘이 따라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지민이 설명을 바라는 눈빛으로 형을 바라봤지만, 그는 지민의 눈을 피했다. 좁은 방문을 막아선 남자들에 지민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로 눈을 굴렸다. 뭔가 잘못한 게 있는지 지난날을 돌이켜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하루하루였다.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삶을 돌아본 지민은 최대한 불쌍하게 눈꼬리를 내린 채로 험악해 보이는 남자들에게 말했다.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나쁜 의도로 그런 건 아니고….”
  “얘 뭐라는 거야?”
  “그러게나 말입니다, 형님.”


  남자 한 명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지민을 가리켰다. 지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자들을 바라봤다. 아까보다 한층 억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럼 무슨 일로….”


  남자들의 눈치를 살피며 뒤에 얌전히 서 있는 형을 바라보았지만, 형은 여전히 지민을 외면했다. 남자 한 명이 주머니를 뒤적였다. 지민은 칼이라도 꺼내는 건가 싶어 잔뜩 긴장한 채로 한 발짝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남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어울리지도 않게 새하얀 쪽지였다. 곱게 쪽지 모양으로 접힌 종이를 받으라는 듯 지민에게 내밀었다. 지민이 멍청히 손에 들린 종이 쪼가리를 보고만 있자 남자가 얼굴을 구겼다.


  “아따, 뭐 하고 있냐. 받어!”
  “아, 네, 네.”


  지민은 허둥지둥 남자로부터 쪽지를 받았다. 이게 뭐냐는 눈빛으로 올려다보자 남자는 펴보라는 듯 턱짓으로 쪽지를 가리켰다. 누가 봐도 나 주먹으로 먹고산다 광고하고 있는 남자 둘이 다짜고짜 쳐들어와 건넨 쪽지라 지민은 손이 덜덜 떨려올 지경이었다. 애처로운 눈빛이 방 안을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결심한 듯 조심스럽게 쪽지를 열어보았다. 주소 두 개가 나란히 적혀있었다. 예상을 벗어나 평범한 내용에 지민이 눈을 느리게 끔뻑였다. 


  “이게 뭐예요?”


  정말 모르겠다는 듯 순수한 지민의 눈빛을 보며 남자들은 혀를 찼다. “딱 보면 딱이제!” 답답한 듯 지민에게 손가락질하는 남자의 모습에 지민은 헙, 입을 닫았다. 그러니까 이건 지민이 가끔 아는 형들로부터 전해 받아 해오던 자질구레한 심부름 비슷한 거로 추정됐다. 그걸 굳이 전달해주러 온 인물들이 범상치 않았다는 것만 빼면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이제야 지민이 알아듣는 눈치이자 남자들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뭔진 알것지? 실수 없이 잘 갖고 와라.”
  “아…네….”


  기어들어가는 지민의 목소리에 어느덧 지민의 옆으로 온 형이 귓가에 속닥거렸다. 하도 개미 같은 목소리여서 지민은 몇 번이나 되물어야 했다. 


  “야, 지민아 이거 좀 위험하긴 한데…. 꼭 널 보내라고 해서….”


  겨우 형의 속닥거리는 말을 알아들은 지민이 잔뜩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를? 누가? 지민의 물음에 형이 곤란한 듯 우물쭈물했다. 지민이 대답을 재촉했다. “뭘 그렇게 속닥거리고 있냐.” 두 사람이 답답한지 불청객 한 명이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형은 남자의 말에 어색하게 웃어 보이더니 아까보다도 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지민의 물음에 답했다. 


  “그…그러니까…보스가….”
  “보스?”


  지민이 반문하자 형은 보스라는 단어에 눈썹을 꿈틀거리는 남자들의 눈치를 살폈다. 쉿. 목소리가 너무 크잖아.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형의 모습은 안중에도 없이 지민은 자신과 관계가 없어도 너무 없는 단어에 온 신경이 가 있었다. 평생 자신과 엮일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던 단어였기에 현실감도 없었다. 


  “무슨 보스?”


  정말 모르겠다는 듯한 지민의 태도에 한숨을 푹 쉰 형이 남자들의 눈치를 살피며 지민의 귓가에 속삭였다.


  “여기 다 관리하는 보스지, 뭐긴 뭐야.”


  듣고 나니 지민은 더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대체 날 왜? 날 어떻게 알아? 조직에서 관리하는 클럽이 여기 하나일 것도 아니었고, 설사 여기 한군데라고 쳐도 조직이 클럽만 하는 것도 아닐 텐데. 조직 보스에게 지민은 그냥 발밑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와 같은 존재일 게 분명했다. 조직원도 아니고 그냥 관리하는 매장에 다니는 일개 직원 나부랭이를 어떻게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 안단 말인가.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지민의 물음에 형은 자기도 잘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얘기는 끝났는가?”


  기다리다 지친 남자가 끼어들지 않았으면 지민은 계속 그 자리에 석상처럼 굳어 있었을 것이다. 별일 없을 거야. 보수도 짭짤하고. 귓가에 속삭이는 형의 목소리와 더는 못 기다리겠다는 험상궂은 표정에 지민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민에게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애초부터 주어지지 않았다. 


  “딱 일주일 후에 그 밑에 주소로 갖고 와라잉. 위에 주소는 물건 받는 곳인 거 알제?”
  “네, 네.”
  “그럼 우린 가볼 테니 일들 봐.”
  “들어가십시오.”


  남자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형을 곁눈질로 살핀 지민이 어정쩡하게 몸을 숙여 인사했다. 방문이 닫히고 나서야 굽혔던 몸을 편 지민이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형을 바라봤다.


  “아니…갑자기 와서 여기 민이 누구냐! 이러는데…. 아무튼 뭐 별일 아닐 거야. 전에도 비슷한 일 많이 해봤잖아. 진짜 별일 아니야. 평소처럼 그냥 하면 돼. 보수도 짭짤하고.”
  “어려운 일 아니라면서 형 왜 이렇게 쩔쩔 매?”
  “어, 어?”


  평소에 하던 심부름과 그렇게 달라 보이지는 않았는데 안심시키기 위해 온갖 말을 다 하는 형의 모습이 오히려 지민은 더 수상했다. 


  “아니…그런 건 아니야.”
  “아, 뭔데! 왜 그러는데! 여기 뭐 문제 있지? 그런 거지?”


  고민하는 듯하던 형은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너도 알잖아, 보스.” 지민은 단번에 인상을 구겼다. 보스라는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인지, 누구인지, 이름은 뭔지, 어떻게 생겼는지 지민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지민이 툴툴거리자 형이 놀란 듯 토끼눈을 했다. 


  “몰라? 보스를?”
  “아니, 내가 어떻게 알아.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왜 그러는데. 보스가 뭐.”


  신기한 걸 보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형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지민은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천연기념물이라도 보는 표정이던 형은 둘뿐인 방인데도 엿듣는 사람은 없는지 주변을 살핀 후 지민에게 속삭였다. 미친개야, 미친개. 지민의 얼굴이 더는 구겨질 수 없을 정도로 꾸깃꾸깃해졌다. 




  그 후, 지민은 틈나는 대로 클럽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스에 관해 물었다. 지민은 ‘보스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하세요.’ 라는 메뉴얼이 존재하나 싶은 생각을 할 정도였다. 메뉴얼을 외우지 않는 이상 대답이 이렇게 똑같을 수 있나 싶었다. 
  미친개.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 앵무새같이 반복되는 말끝은 “완전 미친개야. 잔인하고 거침없고. 그러니까 젊은 나이에 보스 소리 듣고 있지. 잘못 걸리면 그냥 쥐도 새도 모르게 끽.” 이라는 말로 막을 내렸다. 친절하게 목을 긋는 시늉까지 하는 동료를 끝으로 지민은 보스에 관해 묻는 것을 포기했다. 굳이 더 묻지 않아도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이 대체 나를 왜. 나도 모르게 보스한테 실수한 적 있나. 약속한 날이 다가올수록 지민은 불안해졌기에 매일 밤 잠들기 전, 별일 없을 거라고 자신을 다독여야 했다. 



*    *    *



  평소에는 느리게만 가던 시간이 이럴 때만 빠르게 흘렀다. 벌써 일주일이 지나버렸다. 지민은 잔뜩 울상인 얼굴로 쪽방을 나섰다. 지민과 마주친 동료 한 명이 잘 다녀오라며 지민을 다독였다. 울 것 같은 얼굴로 나선 밖은 눈물이 날 정도로 화창한 날씨였다. 어딘가 죽기 딱 좋은 날씨 같기도 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스스로 타이르며 첫 번째 목적지로 물건을 받으러 향했다. 


  평소와 다를 것이 하나 없었다. 그냥 주는 물건을 조심히 받아 챙긴 후, 배달해야 하는 장소로 가기만 하면 됐다. 문제는 배달을 그 무시무시한 소문만 무성한 보스에게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지민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애처롭게 발걸음을 옮겼다. 걷는 속도를 늦춰보고 초록 불로 바뀐 신호등을 뛰어가서 건너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늦장이란 늦장은 다 부려봤지만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고 말았다. 어딘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건물이었다. 사람 한 명 죽어 나가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꼭 그런 풍경이었다. 지민은 침을 꼴깍 삼킨 후 조심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허름한 계단을 올라 도착한 사무실 문 앞에서 지민은 장장 십 분째 문고리를 잡았다 놓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자신을 타일러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영원히 여기서 이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것도 아니었고, 도망간다면 그때는 정말 저승에서 만나야 할 것 같았기에 지민은 심호흡한 후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낡아 보이는 외양과는 달리 어떤 소음도 없이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지민은 살짝 열린 문 안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계세요…?”


  그러나 지민이 이렇게 긴장한 것이 무색하게도 사무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뭐지, 여기가 아닌가. 지민은 고개를 갸웃하며 조심스럽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분명히 주소를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 이 건물이 맞았다. 비주얼 적으로 봐도 이 건물이 틀림없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사무실을 둘러보던 지민은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 돌아봤다. 익숙한 얼굴이 서 있었다. 윤기였다. 


  “어?”


  지민은 저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윤기를 가리켰다. 윤기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해있는 손가락으로 향했다가 지민의 얼굴로 옮겨갔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지민은 아차차 싶어 손을 내리고 꾸벅 인사를 했다. 일주일 전 즈음 봤던 그 재수 없던 손님이었다. 클럽에서 손님과 직원으로 만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인사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지만, 곧 ‘VVIP고객이니까.’라고 결론을 내렸다. 


  남자는 여전히 하얗고 무표정이었다. 이 사람이 왜 여기 있나, 머리를 굴리던 지민은 그래도 아는 얼굴을 만났다는 생각에 어디서 용기가 솟았는지 윤기에게 말을 걸었다. 


  “보스를 아세요?”
  “보스? 잘 알지.”


  예상외의 대답에 지민이 놀란 눈으로 윤기를 바라봤다. 하긴. 여기까지 올 정도면 보스랑 잘 아는 사이겠지. 혼자 납득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지민을 윤기가 흥미로운 눈으로 쳐다봤다. 


  “어떤 사람이에요?”


  윤기가 고개를 비스듬히 꺾은 채로 지민을 바라봤다. 정말 궁금해하는 모습이었다.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예상치 못한 역질문에 당황한 지민이 “어…어….”하고 말을 더듬었다. 힐끔 바라본 윤기의 얼굴은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진짜 표정만으로도 사람 죽이겠네. 지민은 윤기의 시선을 피해 눈을 굴리다가 주변에서 주워 들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엄청 무섭고 막 잔인하고 인간이 아니라고…완전 미친개라던데요?”


  말하고 윤기의 눈치를 살피니 아까부터 굳어 있던 표정이 한층 더 굳은 것으로 보였다. 지민은 아차 싶었다. 보스를 잘 안다고 했으니까 측근일 수도 있는데…. 나 진짜 이대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거 아니야? 지민은 어색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벌벌 떨고 있었다. 


  “아, 아니 제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건 아니고…주변에서….”


  잔뜩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윤기의 표정은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민은 아까부터 빤히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이리저리 눈을 피하며 웃어 보였다. 1초가 1분 같았다. 아무라도 좋으니 제발 이 상황에서 구해달라고 소리치고 싶은 찰나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곧 문이 벌컥 열리고 사무실에 어울릴 만한 남자들이 들어왔다. 다들 정장을 빼입고는 있었으나 몸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나 뒷골목 사람이오’를 써 붙이고 있었다. 


  “넌 뭐냐?”


  사무실로 들어오던 조직원 한 명이 지민을 보고 물었다. 지민은 하하하, 소리까지 내어 어색하게 웃었다.


  “뭐 좀 배달하러 왔습니다….”


  주섬주섬 소중하게 챙겨온 물건을 꺼내 남자에게 내밀자 남자는 멀뚱히 지민과 지민이 가져온 물건을 번갈아 보더니 길을 터주었다. 지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자들이 터준 길을 바라봤다. 그 끝에는 윤기가 책상에 비스듬히 기대 서 있었다. 지민이 의아한 표정으로 윤기를 중심으로 길을 만든 남자들을 두리번거렸다. 윤기는 클럽에서 봤던 날처럼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지민을 불렀다. 


  “미니.”
  “저요?”


  지민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왜 날 부르냐는 표정이었다. 윤기는 픽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았다.


  “그래. 여기 미니가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저는 미니가 아니라 민! 이라니까요.”
  “그래, 미니. 그거 들고 와.”


  지민은 사태파악이 잘 안 되었다. 대체 저 남자는 뭔데 저기 저렇게 있는 걸까. 꼭 옆에 쫘르륵 서 있는 덩치 아저씨들의 상사인 양 구는 남자를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지민은 윤기에게 다가갔다. 이유는 단순했다. 무서웠으니까. 윤기의 서늘한 눈빛은 위압적으로 서 있는 남자들보다도 무서웠다. 


  윤기는 다가온 지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뭐 어쩌라는 걸까. 지민은 윤기의 하얀 손을 멀뚱히 보다가 그 위로 자신의 손을 올렸다. 허. 윤기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지민을 봤다. 


  “뭐하는 거야?”
  “어…. 어…?”
  “그거 달라고, 그거.”


  윤기가 눈짓으로 자신의 손 위에 올려져 있는 쪽과 반대쪽 손에 들린 걸 가리켰다. 아. 멍청한 탄성을 내뱉은 지민이 물건을 주려고 윤기의 손 위로 올렸던 손을 떼려고 하는 순간 윤기가 지민의 손을 꽉 붙잡았다. 지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꽉 잡힌 손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게 뭐냐는 눈빛으로 지민이 윤기를 바라보자 윤기는 한쪽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그래서 내가 미친개라고.”


  제대로 된 사고가 되지 않는 건지 지민은 윤기의 말을 한참이나 곱씹어 봐야 했다. 그리고 그 말뜻을 이해한 순간 지민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어, 그게….”


  이제야 상황파악이 된 듯 지민의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지민의 손을 붙잡고 있는 윤기에게도 그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러니까…그쪽이…보스예요?”


  다시 생각해도 멍청한 말이었다고 훗날 지민은 오늘을 회상하면서 머리를 쥐어뜯곤 했다. 윤기는 재밌는 걸 봤다는 듯, 혹은 어이없는 걸 봤다는 듯 웃었다. 하하하. 그것도 소리까지 내면서. 지민은 땀이 삐질 나는 것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자신의 상황이 속된 말로 좆 됐다는 건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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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저차 얽히게 된 보스 뉸기와 평범하다면 평범한 지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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