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03 12:41

[국민] 나선 정원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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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모두 가상의 시대와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 지명과 시대 상황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 월간국민 7월호에 참가한 글입니다!




Acoustic Cafe - Long Long Ago


 나선정원

01 백합의 정원






양관으로 향하는 길은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이었다. 양옆으로 우뚝 솟은 숲 한가운데를 지나는 길은 잘 닦인 것도 아니라 아무리 고급스러운 승용차를 몰아도 덜컹거림은 피할 길이 없었다. 숲을 따라 한참을 달리다 보면 그때가 되어서야 거대한 양관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누구 한 명이 차를 멈춰 세우고 한바탕 속을 게워낸 후에야 말이다.


양관에 대한 많은 소문이 저 거리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 개중 가장 믿을만한 것은 다 죽어가는 늙은 영감과 그 손자 한 명이 살고 있다는 거였는데 영감이 가진 재산이 어마무시하단 것이었다. 진즉 날고 기는 사기꾼들이 그 어마무시하다는 재산을 노리고 영감에게 접근하려고 했으나 도깨비마냥 부리부리한 눈깔에 쫓겨 양관엔 발도 못 붙여 봤다는 소문이 경성 바닥에 파다했다. 정말 그 영감이 가진 재산이 막대한 지는 아무도 몰랐다. 어떻게든 양관에 한번 발을 들인 이들은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또한 공공연한 사실처럼 길바닥에 퍼진 이야기였다. 그래서 더 양관의 실체에 대한 말이 이러쿵저러쿵 많은 것일지도 몰랐다. 진실을 확인시켜줄 사람이 없으니.


실체가 있는 듯 없는 이야기는 금세 다른 흥밋거리에 먹혀 사라진다. 경성이란 온갖 사람과 온갖 이야기가 모이는 장소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모두의 관심에서 양관과 어마어마한 부를 가졌다는 영감의 이야기가 철 지난 이야기처럼 여겨지고 종국엔 , 그런 이야기도 있었지.’ 하는 추억팔이용으로 전락했을 때 경성 바닥이 발칵 뒤집힐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추위가 유난을 부리던 겨울이었다. 양관의 주인이자 막대한 부를 가진 자. 박 영감이 죽었다는 말이었다. 또 어디서 그런 해괴망측한 소리가 나온 건가 그 바닥 사람들은 믿지도 않았지만, 박 영감이 죽으며 양관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하며 박 영감의 죽음은 점차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박 영감이 죽어서. 그래서 그 돈은? 양관은? 쏟아지는 질문에 안색이 파리한 여자는 딱 한 마디 했다. 도련님. , 가엾은 도련님.” 가엾은 도련님은 대체 누구인가. 멀리 갈 것도 없었다. 박 영감의 하나 남은 핏줄. 외손자를 말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박 영감이 죽었다면 그 모든 재산은 하나뿐인 도련님이 물려받을 텐데 어찌하여 여인은 그를 가엾어하는가. 아무도 그 답은 몰랐다. 여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박 영감이 죽기 두 달 전으로 돌아가서 그 가엾은 도련님 지민은 고급 재질의 커튼이 쳐진 양관의 거대한 창을 통해 이쪽으로 들어오고 있는 차 한 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겉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차를 보는 지민의 표정으로 보건대, 썩 반가운 방문객은 아닌 듯했다. 덜컹거리던 차가 양관의 거대한 문을 지나 정원으로 들어오는 것을 지민은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봤다. 한참을 그렇게 꼼짝없이 창문 앞에 서 있는데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이 느껴진다.



무슨 일이야?”



지민의 뒤에서 머뭇거리던 건 아직 소년티가 나는 양관의 사용인이었다. 도련님과 유일한 또래인 이 사용인은 이름은 정국으로 처음 양관에 들어온 어린 시절부터 지민을 보살피는 일을 도맡아 한 이었.



도련님, 주인님께서.”

할아버지가 날 부르시던?”

. 손님이.”

.”



정국은 제 작은 주인의 눈치를 살폈다. 지민의 기분은 시도 때도 없이 바뀌어 예측하기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서로의 부모보다도 붙어 있던 시간이 오래되어서 그런지 이젠 제법 지민의 기분을 읽을 수 있었다. 몹시도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도련님을 이번에는 어떻게 달래야 할지가 지금 정국에게 있어선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정국아.”

, 도련님.”

저들이 얼마나 머물렀다 갈까.”

그건.”



정국은 좀 전에 이번 손님은 제법 길게 머물다 갈 거라는 언질을 받았지만, 이 사실을 지민에게 전해도 되는지는 망설였다. 어젯밤 욕조 안에 몸을 웅크린 지민이 한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내일이면 고모네가 온대. 나는 그 집 사람들이 참 싫더라. 지민이 무언가를 마음에 들어 하는 일이 드물긴 했으나 그렇다고 무턱대고 적대심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 정국이 무어라 말하면 좋을지 몰라 고민하는 동안 지민은 열려있던 커튼을 휙 닫아버렸다.



뭘 그렇게 뜸을 들이고 있니? 가자.”



손님을 맞으러 가지 않겠다고 고집이라도 부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지민은 정국을 지나쳐 아래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디뎠다.



안 오니?”



그 발걸음에서 씩씩거리는 것이 느껴져 도련님이 혹 다른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고민하던 정국은 날카로운 지민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허둥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지민이 막 층계를 잇는 계단을 통해 1층에 발을 디뎠을 때, 딱 맞게 양관의 거대한 문이 열린다. 좀처럼 열릴 일이 잘 없는 문이 열리는 것을 저택의 사용인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지민은 사나워 보이는 눈빛을 하곤 문의 정면에 멈춰 섰. 손님을 맞는다기엔 영 불성 한 태도였다.



어머. 이렇게 마중까지.”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여성은 고급 재질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걸친 옷에 비하면 썩 우아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지민은 여전히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여성을 쳐다봤다. 노려봤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몰랐다. 낯선 이의 방문은 사용인들 또한 썩 반기는 모양새가 아니었는데 그 중심에 선 도련님조차 그러니 분위기가 어떠할지는 뻔한 이야기였다. 응당 사람이라면 날이 선 듯한 공기를 못 읽을 리가 없는 상황임에도 방문객은 아주 뻔뻔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다들 고마워요. 먼 길 온 보람이 있네.”



우아한 척 짓는 미소가 역겨웠다. 지민은 구역질하는 대신 비웃음을 흘렸다.



사람이 눈만 뜨고 있다고 해서 다 맹인이 아닌 건 아니죠.”

…….”



미소를 짓고 있는 여자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지민은 그런 여자의 얼굴을 뚫릴 듯 바라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훑어봤다. 명백하게 깔보는 시선이었다.



잘 맞지도 않는 옷을 입으신다고 고생 좀 하셨겠네요.”

!”

사실은 더 품위 있는 분인데. 그쵸?”



여자는 눈앞의 영악한 소년을 노려봤다. 비웃음을 흘릴 때를 제외하곤 내내 표정 없서 있던 소년이 빙그레 웃는다.



어서 오세, 고모. 편히 지내다 가셨으면 좋겠네요.”

그래. 고맙구나.”



망설임 없이 자리를 뜨려던 지민의 시야에 여자의 뒤에 서 어찌할 줄 모르는 듯 큰 눈을 굴리던 소년이 들어왔다. 멈칫거리는 지민의 반응을 알아차린 여자가 자신의 뒤에 멀뚱히 서 있는 소년의 손을 잡아 앞으로 끌어낸다.



인사하렴. 내 아들이다.”

…….”

너와는 고종사촌이겠구나. 나이도 같은데 서로 인사하렴.”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지민이 남자애를 바라봤다. 쏠리는 시선에 손을 꼼질 거리던 남자애가 손을 내민다.



, 안녕. 나는.”



. 여기가 어디라고. 남자애의 자기소개는 지민이 중얼거리는 말에 삼켜졌다. 여자는 일그러지는 지민의 얼굴을 보며 희열감에 들뜬 미소를 지었다.



어르신께서 몸도 좋지 않으신데 가까이에서 보살필 이도 필요하지 않겠니. 당분간은 여기서 머물 예정이니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구나.”



여자는 지민에게서 시선을 돌려 현관에 서 있던 양관의 사용인들을 바라봤다. 여자의 시선을 알아챈 이가 이쪽으로 오시라며 여자를 맞는다. 힐끗 돌아보니 지민이 시선을 내리깐 채로 아주 못마땅하단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영악하게 군다 한바깥세상도 모르는 어린 아이일 뿐이었다.



태형아. 이리 오렴.”



아들을 부르며 여자는 양관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곧 자신의 것이 될 모든 것을. 우선 저 그림들부터 치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지민의 곁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사내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도련님. 괜찮으셔요?”



지민의 안색을 살피는 모양새가 여타 사용인들과는 달랐다. 그래 봤자 소년티가 나는 나이다. 까탈스러운 도련님의 밑에서 매일 눈치를 보고 사는 삶보단 자신이 제시하는 삶을 택할 것이라 여인은 확신했다. 저 소년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집안의 사람들은 모두 그렇겠지.



짐을 풀고 어르신을 뵈러 가겠네.”

, 저녁 시간이니 그때 함께 식사하시면서.”



여인의 시선이 날아와 박히자 촌스러운 얼굴의 사용인이 허둥거린다.



어르신께선 방에 누가 들어오는 걸 싫어하셔서.”

내가 그들과 같겠니?”

, 그것이 아니오라.”



제 어미에게 쩔쩔매고 있는 이를 보며 태형은 제 어미가 참으로 뻔뻔하다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자신들은 이 집의 이방인일 텐데 어미는 벌써 주인 행세를 하려 들고 있었다. 태형은 방금 마주쳤던 지민의 얼굴을 떠올렸다. 양관으로 오는 차 안에서 어미가 했던 말도 떠올린다.



네가 그 아이와 친해졌으면 좋겠구나.



정말 아들에게 친구가 생기길 바라서 한 말은 아님은 확실했다. 얼굴도 모르고 살았던 사촌의 존재를 저쪽은 그렇게 반기는 기색도 아니었다. 친조카임에도 성이 다른 것만 봐도 그랬다. 이 집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음을.

 

 







도련님. 괜찮으셔요?”



정국은 아까부터 말이 없는 지민이 걱정되어 그 주변을 서성거리며 맴돌았다. 땅을 바라보던 지민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고개를 들었다. 기분이 상한 표정은 아니었다. 다만.



저 집 사람들은 하나같이 분수를 모르는구나.



광채가 도는 눈동자를 보며 정국은 조용하던 집안이 한바탕 소란스러워지겠구나 생각했다. 지민은 고모네가 사라진 쪽을 짧게 응시하다 곧 저녁준비가 한창일 부엌으로 향했다. 방으로 향하지 않는 지민의 발걸음에 묘한 불안감을 안은 채 정국은 그 뒤를 따랐다.



내 몫은 챙기지 않아도 돼. 안 먹을 거니까.”



아니나다를까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부엌 안의 사용인들이 모두 행동을 멈출만한 말을 던진다. 도련님의 심술에 정국만 작게 탄식하며 지민의 팔을 붙잡았다.



도련님그래도 식사는 하셔야지요.”

됐다. 도저히 밥맛이 떨어져 저 집 사람들하고 한 식탁에서는 못 먹겠구.”



더 붙잡을 새도 없이 지민은 부엌에서 발을 돌렸다. 지민이 식사를 거부하는 것은 모두 어릴 적 이야기였다. 박 영감 때문에 저녁 식사는 거를 수 없이 함께해야만 하는 일과였다. 완곡해 보이는 지민의 태도에 정국만 발을 동동 굴렀다. 저러다 또 무슨 호통을 들으시려구. 최근에야 기력이 쇠해 예전만 하지 못하다지만 박 영감은 그 존재만으로도 양관의 사람들을 벌벌 떨게 하는 이였다. 어찌나 기골이 장대하고 기가 센 지 칠순의 노인이라곤 믿기지 않는 풍채였다.



도련님!”



정국이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타게 불러보았지만, 지민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정말루어쩌시려구.”

정국아.”



발을 동동 구르는데 시녀장이 다가와 정국을 부른다. 집안사람들은 좀처럼 지민에게 말을 붙이는 일이 잘 없었는데 그건 지민과 모든 시간을 함께하는 정국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지민 외의 인물과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 정국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시녀장을 바라봤다.



빵이라도 좀 챙겨줄 테니 이따가 도련님께 챙겨 드리렴. 배를 곯으시면 안 된.”

, .”



정국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시녀장이 부엌으로 돌아가 부산스럽게 움직이더니 종이에 쌓인 빵을 몇 점 내왔다. 정국은 빵을 소중히 품에 안고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 집에 지민에게 호의를 가진 인물이 있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호의란 것이 동정에 기인한 것이라 해도 말이다.



, 그럼 올라가 보겠습니!”



다시 한 번 어리숙하니 고개를 숙인 정국이 이미 사라진 지민의 뒤를 쫓아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저택의 사용인이라면 비단 품위를 지켜야 한다고 어릴 적부터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기에 비록 뛰지는 못하였지만, 그와 별다를 것 없는 모양새였다.







서둘러 올라온 2층은 언제나처럼 고요했다. 지민의 방은 복도의 가장 끝에 있었다. 어릴 적엔 아무도 없는 긴 복도를 걷는 것이 무서웠던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닫힌 방문들 혹은 벽에서 무언가 튀어나올까 그랬었는데 점차 숨이 막힐 것 같은 적막감이 무서워졌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은 이 적막감이 편안하게 다가왔다.


지민의 방문 앞에 멈춰선 정국은 문을 두어 번 두드리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방문을 열었다.



도련님! 이것 보세. 제가 뭘 받아왔는지. 도련님?”



그러나 지민이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정국은 탁상 위에 받아온 빵을 내려놓고 방안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가지런히 개어져 있는 이불도 들춰보고 벽장도 열어보고 심지어 침대 밑까지도 살펴보았지만, 어디에도 지민의 모습은 없었다.



어디 가셨지.”



금세 울상이 된 정국이 발을 동동 굴렀다. 평소에도 좀처럼 방을 나서 돌아다니는 적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사라져버리니 걱정되었다. 이 집에 지민이 마음 놓고 있을 장소란 자신의 방뿐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 걱정이었다.


한참을 방을 서성이며 지민의 행방에 대해 생각하던 정국의 머릿속에 한 장소가 불쑥 떠올랐다. 한 곳이 더 있었다. 지민이 마음 놓고 있을 장소. 정국은 망설임 없이 방을 뛰쳐나갔다. 뛰면 안 된다는 수칙은 이미 안중에 없었다.

 



*     *     *



 

정국이 처음 양관에 들어왔을 때의 나이는 고작 아홉 살이었다. 무슨 계기로 이곳에 발을 들인 것인지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보나 마돈 같은 하찮은 문제일 것이다. 아홉 살의 남자아이가 양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집안일을 거들기에도 정국은 너무 어렸다. 게다가 당시의 정국은 또래 아이들보다도 작은 편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양관에는 정국 또래의 아이가 없었다. 정국은 그 속에서 어른들의 눈치를 보는 법을 가장 먼저 익혔다. 있는 듯 없는 듯 눈치껏 행동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아직 어린 몸에는 한계가 있었다. 거추장스러우니 썩 꺼지라는 말을 듣고 기어이 눈물이 터진 정국은 누가 볼세라 눈물을 훔치며 무작정 저택 밖으로 나섰다. 어딘지도 모를 곳에 웅크려 양관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소리 내어 엉엉 울고 있을 때 지민을 만났다.



, 너 왜 우니?”



분명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정국은 양관에 들어와 처음 인지하는 또래의 존재에 눈을 크게 뜨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귀신이라도 본 얼굴이었다. 그 하얀 얼굴을 보며 지민은 입에 물고 있던 막대 사탕을 건넸다.



너 귀엽다. 먹을래?”



정국은 멍청하게 쭈그려 앉은 채 입을 헤 벌리고 지민을 올려다보았다. 하얗고 말랑말랑해 보이는 아이는 새초롬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지민이 뭐하냐는 듯 막대 사탕을 다시 쭉 내민다. 정국이 쭈뼛거리며 손을 뻗어 사탕을 받는다.



, 감사합니다.”



받긴 받았으나 이걸 정말 자신이 먹어도 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한 게 뭐 있다고 넙죽 받아먹냐고 호통이라도 들으면 어떡하지. 정국이 작은 머리통을 굴리는 동안 지민은 눈앞의 꼬질한 남자아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 집에 자신 또래의 아이가 있단 것도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그러는 사이 눈만 떼구르르 굴리던 정국이 막대 사탕을 제 입에 넣었다. 맨날 보기만 했던 간식거리였다. 입에 넣자마자 퍼지는 달콤한 맛에 정국은 눈물이 쏙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 조그마한 설탕 덩어리가 이렇게 행복을 주는 거였다니. 매일 먹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너 누구니?”



아예 정국의 앞에 쭈그려 앉은 지민이 입안에서 사탕을 열심히 굴리는 정국을 빤히 보며 물었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질문을 받는 순간이었다. 허둥거리며 답을 하려고 입을 여는데 사탕이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



정국이 허망한 얼굴로 떨어진 사탕을 바라본다. 그 모습을 보던 지민이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누군지 알려주면 새 걸루 하나 줄게.”

참말이어요?”

그럼.”

저는정국이라고 해요. 얼마 전에 들어왔는데.”



지민이 고개를 갸웃한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정국은 그 이상 자신을 뭐라 소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저택에서 맡아 하는 일도 따로 없으니 소개하기가 참 난감했다. 지민은 정국의 동그란 얼굴을 바라보다 아무렴 좋다는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정국아. 나는 지민이야.”



정국은 지민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언젠가 사용인들이 속닥거리는 것을 들은 것이다. 아비가 아닌 어미의 성을 따른 도련님. 박 영감의 유일하게 남은 혈육. 정국은 지민에 대해 귀동냥으로 들었던 것을 떠올리며 제게 내밀어 진 자그마한 손을 잡았다. 그런 사실들은 다 중요치 않았다. 정국에게 있어 지민은 처음으로 손을 내밀어 준 이일 뿐이었다.



도련님.”



그렇게 불러야 할 것 같았다. 정국은 지민을 평생 자신의 도련님으로 모시기로 했다. 흐흥. 그런 결심을 아는 건지 지민이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어디서 일해? 왜 너를 한 번도 못 봤지?”

저는딱히 맡은 일이 없어요.”

그래? 그거 잘 됐다. 말동무가 필요하던 참이었어.”



지민은 정국의 손을 놓지 않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올 때는 울며 걸어온다고 몰랐는데 다시 보니 제법 예쁜 정원이었다. 정국은 주변을 둘러보며 지민의 손을 꽉 잡았다. 정국이 정원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았는지 멈춰선 지민이 귓가에 속닥거렸다.



예쁘지?”

참말루 예쁜 곳이에요.”

어머니께서 좋아하셨던 곳이야.”

저도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지민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그 미소가 어딘가 슬퍼 보여 정국은 자신이 하면 안 될 말을 한 것인가 잠시 고민해야 했. 지민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정국은 지민의 한 발자국 뒤에서 함께 걸었다. 걷다 보니 저택의 뒷문이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지민은 정국에게 잠시 기다리라 이르더니 빠른 걸음으로 집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정국은 지민의 말대로 얌전히 뒷문 앞에 서서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손을 꼼질거렸다.



너 어디 갔었니?”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소리가 정국의 귓가를 때렸다. 손을 내려다보며 서 있던 정국이 호통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정국보다 바로 위의 사용인이 씩씩거리고 있었다. 바로 위의 위치라고는 하나 그녀는 열여섯이었다. 정국은 눈을 굴리며 뒷걸음질 쳤. 그녀는 평소 정국이 있으나 없으나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오늘은 어째서인지 심사가 뒤틀려도 단단히 뒤틀린 모양이었다.



, 정원에.”

일도 하지 않고 팔자도 좋구나, 아주. 내가 지금 무슨 소릴 듣고 왔는데!”

그치만, 저더러 거치적거린다고 하셨잖아요.”

그게 어떻게 일을 농땡이 치라는 말이 되니? 너 정말 안 되겠구나.”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정국이 고개를 푹 숙이고 옷자락을 만지작거렸다. 여자가 매서운 손길로 정국의 어깨를 잡아챘다.



따라와!”



도련님이 기다리라고 하셨는데. 정국이 우물쭈물하며 가만히 있자 여자가 더 세게 정국을 잡아끌었다.



뭐 하는 거야?”



정국이 비틀거리며 그 손에 끌려갈 때 지민이 돌아왔다. 지민은 정국이 본 적 없는 차가운 얼굴로 자기보다 큰 여자를 노려봤다.



도련님.”

뭐 하는 거냐고 물었잖아.”



찬바람이 쌩쌩 부는 지민의 태도는 정국까지도 얼어붙게 하였다. 소란을 피워서 화가 나신 걸까. 지민을 화나게 하였다는 사실에 정국은 더 풀이 죽었다.



도련님께서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되는 일이어요. 농땡이를 피우길래 단단히 일러줄 생각이었어요.”

이 집에서 내가 신경 쓸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은 내가 정하는 거야. 네가 정하는 게 아니라.”

, 그런 뜻이 아니오라.”

그리고 농땡이 피웠다고 누가 그러든? 그 애는 내 말동무야. 날 위해 일하는 아이니 혼을 내도 내가 내.”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민은 정국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정국이 손을 맞잡자 지민은 멍하니 서 있는 여자를 무시하고 지나쳐 걸었다. 정국은 그런 지민의 뒤를 종종 쫓았다. 지민은 정국을 데리고 2층의 자기 방으로 향했다. 2층엔 처음 올라와 보는 정국이 바닥이 무너질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1층과는 분위기도 공기도 달랐다.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복도 오른쪽 끝 방. 지민이 방문을 열었다.



여기가 내 방이야. 너도 이제부터 여기서 자도록 해.”

?”



정국이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도련님과 한방에서 잔다니. 생각할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건 아니 되어. 저는.”

혼자 자면 외로우니까 이제 네가 옆에 있도록 해. 너의 일은 내 말동무잖니?”

, 그래두.”

잔말 말구. . 사탕이야. 여기 있으면서 먹고 싶은 대로 먹으렴.”



정국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벽장 같은 좁고 어두운 방 안에서 웅크리고 자는 것보다야 훨씬 좋았다. 거기다가 맛있는 사탕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정국이 사탕의 껍질을 까는 동안 지민이 침대 위로 올라앉아 달랑달랑 다리를 흔들었다. 사탕에선 처음 맡아보는 과일 향이 났다. 빨간 사탕을 빤히 보고 있는데 지민이 손짓한다.



이리 올라와.”

아니에요. 저는 더러워서 안 돼요.”

안 되는 게 참 많구나, 너는.”



지민이 불만스럽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정국은 입꼬리를 축 늘어뜨리곤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뭐가 그렇게 죄송한 게 많니. 괜찮으니까 올라와.”



정국이 쭈뼛거리며 침대 위에 엉덩이를 붙였다. 푹신한 것이 꼭 구름 위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건 들고만 있을 거니?”

.”



지민의 시선이 아직 입에 넣지 않은 사탕으로 향했다. 정국은 침대로 올라오라는 말에 정신이 팔려 잠시 잊고 있었던 사탕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처음 맡아보는 달짝지근한 향이 코를 간질인다. 정국이 머뭇거리자 지민이 의아한 얼굴로 물어온다.



? 그 맛이 싫어?”

, 아뇨! 사실 처음 맡아보는 향이라.”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울상을 짓고 있으니 지민이 무릎걸음으로 정국에게로 다가왔다. 그러곤 정국의 코끝에 머물러 있는 사탕을 제 입에 넣었다. 코앞으로 다가온 지민의 얼굴에 놀라 정국이 숨을 들이마시곤 멈췄다. 지민에게선 사탕만큼이나, 아니 사탕보다도 더 달짝지근한 향이 나는 것 같았다. 정국이 시선 둘 곳을 몰라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동안 사탕을 쭉 빤 지민이 별거 아니라는 어투로 말했다.



체리 맛이.”

체리요?”



정국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과일의 이름이었다. 지민은 어깨를 으쓱했다.



있어. 본 적 없니? 크기는 요만한데 빨갛고 동그랗단다.”



정국이 신기하다는 듯 입을 헤 벌렸다. 그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지민이 사탕 든 정국의 손을 겹쳐 잡고 살짝 벌어진 입안으로 사탕을 넣었다.



먹어 봐. 맛있어.”



정국은 처음 느껴보는 맛에 본능적으로 입안에서 사탕을 굴렸다. 여태 먹어본 적 없는 맛은 큰 자극으로 다가왔다. 이리저리 사탕을 굴리는 정국을 바라보며 지민이 개구진 얼굴로 웃었다. 그 나잇대 소년 같은 얼굴이었다.



그거 다 먹고 나면 입술이 엄청 빨개질 거. 쥐 잡아먹은 것처럼.”

?”

걱정하지 . 시간이 지나면 돌아오니까. 신기하지?”



정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 지민은 말없이 침대에 기대 정국이 사탕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사탕이 다 녹아 없어지고 지민의 말대로 빨개진 입술을 한 정국이 사탕이 사라지고막대만 남은 것을 손에 꼭 쥐었다. 사탕을 먹는 짧은 시간이 지나자 지민은 기다렸다는 듯 포근한 이불 사이로 파고 들어갔다.



오늘은 피곤하니 일찍 자야겠어.”

불을 꺼드릴까요?”

괜찮아. 대신 내가 잠들 때까지 재밌는 얘기를 해줘.”

재밌는 얘기요?”



정국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재밌는 얘기라는 건 떠오르지 않았다. 빨리이. 지민이 눈을 감고 재촉했다. 정국은 재미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제 삶이 처음으로 조금 원망스러웠다. 정국이 계속 우물쭈물 뜸을 들이자 결국 참다못한 지민이 눈을 슬쩍 떴다.



여긴 어쩌다 오게 됐어?”

정국은 그때 자신이 무어라 답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난생처음으로 누워본 침대의 감촉이 매우 포근하여 악몽을 꾸지 않고 잘 잤다는 것이었다.

 

 


*     *     *




저택의 뒷문으로 나온 정국이 정원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비록 정원은 아니었지만, 그 길목도 예전엔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는데 제대로 관리하는 이가 없어 이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까지 풍기기 시작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온통 하얀 공간이 나온다. 백합이 가득한 곳은 말 그대로 백합의 정원이었다. 박 영감의 하나뿐인 여식, 양관의 진정한 주인이 될 여인이 생전 가장 사랑하던 장소였다. 비록 정원을 사랑했던 주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 의지를 이어받은 지민의 명으로 여즉 잘 관리가 되고 있었다. 정국은 백합 옆을 지나며 힐끔 꽃밭 사이를 살폈다. 예전에 지민이 저 안에 들어가 누워 있던 적이 있었다. 아직 어린아이의 호흡기에 백합은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었는데. 정국이 빨리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큰일이 될 뻔한 일이었다. 그날의 기억에 꽃밭 사이사이를 훑었지만, 다행히도 지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정국은 마음 놓고 백합의 정원을 지나쳐 걸었다. 조금만 더 가면 아주 커다란 벚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정국이 지민과 처음 만난 장소이자 지민에게 있어 방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안정을 줄 수 있는 곳이었다. 사실 마음의 안정을 주고 있는지는 정국도 확신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도련님?”



벚나무가 가까워지자 정국이 조심스레 지민을 불렀다. 박 영감이 늦은 나이에 본 여식의 탄생일과 같은 날 심어진 나무는 그 둘레도 뻗어 나가는 가지도 어마어마한 존재였다. 지민은 벚나무 더러 사람을 잡아먹고 이리 커졌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정국은 벚나무 아래에 있으면 항상 오싹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정국이 딱 벚나무를 반 바퀴 돌았을 때 지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무 기둥에 기대앉은 기민을 발견한 정국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 옆에 쪼그려 앉았다.



도련님. 날씨가 차요. 감기라도 걸리시면 어쩌려고 그래요.”



가을에 접어든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주변이 산이라서 더 그랬다. 지민은 실내에서 입는 얇은 옷차림이었다. 정국이 기겁하며 제 옷이라도 벗어주려는 것을 지민이 저지한다.



됐어.”

도련님. 입술이 파랗게 질리셨어요.”



핏기가 싹 가신 하얀 얼굴에 정국이 기어코 제 웃옷을 반쯤 벗었다. 지민이 눈을 치뜨며 정국을 바라봤다.



됐다니까.”

안 돼요. 감기 걸리세요.”

옷은 됐으니까 그냥 와서 날 좀 따뜻하게 해줘 봐.”

?”



옷을 벗어주지 말고 따뜻하게 해달라니. 정국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정국이 답답했는지 지민이 작게 한숨을 쉰다.



그냥 옆에 꼭 붙어 있어 달라구. 체온이 제일 따뜻한 법이야.”

.”



그제야 말을 이해한 정국이 지민의 옆에 바짝 붙어 앉는다. 맞닿은 팔을 통해 온기가 전해지면 좋으련만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정국은 웃옷을 벗어 한쪽은 제 어깨에 다른 한쪽은 지민의 어깨에 덮은 후 지민의 몸을 감싸 안았다.



이러면 좀 따뜻해지겠지요?”



덕분에 서로의 얼굴이 코앞이다. 지민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좋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싫증 내지도 않았으니 지민도 만족한 듯했다. 어느새 빨개진 지민의 귀 끝을 보며 정국은 저 자신이 도련님을 따뜻하게 하는 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맞아. 도련님. 오늘 시녀장님이 빵을 주셨어요.”

?”

도련님께서 저녁 식사를 하지 않으신다고 해서.”

아아. 저녁 식사.”



지민은 잊고 있었던 게 생각났다는 듯 느릿느릿 말을 잡아 늘였다. 그 행동 하나하나에 가기 싫다는 진심이 묻어났다. 정국은 잠시 망설이다 지민의 몸을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가지 말아요.”

?”

이대로 둘만 있다가 돌아가요. 저는 도련님이 제일 중요하니까 도련님이 싫은 일은 저도 싫어요.”



지민이 눈을 깜빡이더니 푸스스 웃는다. 그래, 너는 내 편이지. 이 집의 유일한. 애정을 담은 손길이 정국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따듯하다.”

다행이에요. 감기 걸리시면 안 되니까.”

너도 그렇지?”



정국이 말을 멈추고 가만히 지민을 바라봤다. 지민은 정국과 닿은 곳 모두가 뜨겁다고 생각했다. 정국의 볼이 발갛게 물들어갔다.



체리 먹고 싶다.”



지민의 서늘한 손이 열이 오른 뺨을 쓸어내린다. 정국은 처음 먹었던 체리 사탕의 맛이 떠올랐다. 처음 맛보던 맛. 처음 느껴보던 감정. 모든 게 그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 문득 정국은 그날 지민이 자신에게 물었던 질문을 떠올렸다.



여기 어떻게 오게 되었냐는 말 말인데요.”

?”

그날 도련님께서 제게 물으셨던 말이요.”

아아, 그런 걸 기억하고 있니?”

그때 뭐라 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요. 저는 도련님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온 것 같아요.”

…….”

아니, 확신해요. 저는 도련님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온 거예요.”



지민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묘한 얼굴로 정국을 바라볼 뿐이었다. 정국은 어째서인지 심장이 쿵쾅거린다고 생각했다. 긴 침묵 끝에 지민이 정국에게 몸을 기댄 채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그날 여기 온 건 널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해.”

도련님.”

나는 이 나무가 무서웠거든. 사람을 잡아먹는 나무. 근데 그 날은 이상하게 이 나무가 보고 싶었어.”



자신의 가슴께에서 윙윙거리는 목소리에 정국은 침을 꼴깍 삼켰다. 자꾸 입안이 달았다. 꼭 사탕을 먹는 것처럼.



사실은 나무가 아니라 널 보고 싶었던 걸까? 모르겠다.”



정국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며 지민이 푸흐 웃는다.



지금쯤 사람들이 찾고 있을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지민은 잘 알고 있었다. 혼이야 나겠지만 더는 박 영감의 호통도 골칫덩이를 보듯 보는 시선도 두렵지 않았다. 날이 점차 저문다. 찬바람에 지민이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린다. 정국은 더 붙을 수 없을 정도까지 지민을 끌어안았다. 벚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린다. 서로의 온기가 있다면 바람 부는 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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